Life & Happiness

오경숙 , 대전시 선화동

jimie. 2025. 2. 24. 05:11

오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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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February 15, 2025 at 12:12 PM

 

If there is a paradise, I have arrived: Madeira island, Portugal.

천국이 있다면, 클라라는 지금 그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리스본에서 1 시간반, 카사블랑카에서 2 시간, 대서양 외로운 섬 마데이라로 클라라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키프러스의 조약돌 해변, 코르시카의 웅장한 산들, 크레타 섬의 햇살, 사르데니아 섬의 모래해변, 시실리아의 항구들…

이 모든 아름다움을 다 합쳐도 마데이라 섬의 아름다움을 견주할 수 없습니다.

친구들이 묻습니다.

“ 이랗게 아름다운 곳을 여행지로 선택하게 된 동기가 뭐야?“

아버지가 사준 세계위인전?

엔리코 왕자? 바스코 다가마? 찰스 다윈?

김찬삼교수의 세계여행기?

축구선수 호날도의 고향?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월부책 판매원 권씨 아저씨에 대한 기억…

친구에게 권씨 아저씨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줬습니다.

그립고 고마운 분입니다.

+12

 

오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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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선화동

 

초로의 남자가 반 쯤 열려진 쪽문으로 들어 섭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입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엔 그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보여 주는 듯 주름이 깊이 패여져 있습니다.

클라라가 방문자의 정체를 알아챈 것은 얼굴 보다도 그가 입고 있던 옷 때문 입니다.

반질반질 닳는 양복의 소매,

군데군데 짜집기를 한 흔적이 보이는 바지,

누렇게 변색된 와이셔츠에 달린 단추들은 한여름 더위에 지친 축늘어진 강아지의 혀 처럼 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꾸낏꾸깃한 넥타이는 삶의 무게처럼 그의 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 책장사 아저씨 왔어요 ”

안방에 계신 아버지에게 방문객이 있음을 알립니다.

“ 책장사 아저씨가 아니라 권씨 아저씨라고 부르렴 “

클라라에게 호칭을 정정해 주며 아버지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십니다.

엄마는 봉순이 언니에게 안주거리와 술, 그리고 돼지고기를 사오라고 시장으로 내 보냅니다.

아버지가 권씨아저씨의 두손을 잡으며 말합니다.

“이제 막내까지 글을 읽을 줄 알어서 아이들 읽을 책들이 필요했느데 마침 잘 오셨소“

아저씨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아저씨가 낡고 묵직한 가방에서 아이들 책 catalog 를 꺼냅니다.

꼼꼼히 살펴 본 아버지가 어린이 위인전 전집을 1 년 할부로 계약합니다.

저녁과 반주까지 드신 권 아저씨가 떠나자

엄마가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 차라리 돈을 조금 줘서 보내지, 그 책 팔아서 몇 푼이나 벌겠어요? ”

아버지가 슬픈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 책 판매는 권씨의 마지막 자존심이고

이 마저 잃으면 그는 막다른 길에 서게 될 것이오 ”

아무리 일년 동안 나누어 갚는다지만 빈한한 공무원 월급으로는 큰 부담이였을 것입니다.

가끔씩 엄마가 월부책값 때문에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한탄할 때면

우리는 얼른 서재로 뛰어 들어가 위인전을 들고 읽거나, 읽는 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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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값을 다 갚을즈음이면

어김없이 아저씨가 catalog 가 든 가방을 들고 찾아옵니다.

해가 갈 수록

아저씨의 어깨는 더 굽어지고

얼굴의 주름은 더 깊어집니다.

그의 양복은 너무 낡아 속감이 보이고

누렇게 변색된 와이셔츠에는 반쯤 깨진 단추들이 힘겹게 매달려 있습니다.

어쩐 일인지 책값 월부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저씨가 찾아 왔습니다.

아버지가 아저씨의 사정을 뻔히 알듯이

권씨 아저씨도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두 개의 할부금을 지불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저씨의 때이른 방문을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미안한 얼굴로 마당에 쭈빗쭈빗서 있는 아저씨를 아버지가 안방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아버지는 권 아저씨가 파는 책들 중 가장 비싼 책들을 가르치며 말합니다.

“이번에는 나를 위한 책을 사고싶소.

해외여행 한 번 가는것이 소원인데

이렇게 책에서라도 여행할 수 있어 행복해질 것 같소“

아버지가 선택한 책들은 두꺼운 표지와 사진들이 가득한 김찬삼 교수의 세계여행이였습니다.

권씨 아저씨가 떠난 후 아버지는 상념에 빠진 듯 합니다.

책 할부금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아버지가 애잔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 아무래도 권씨의 방문이 마지막일 것 같소”

아버지의 예감이 맞았습니다.

얼마 후 권씨 아저씨가 부인의 묘소에서 자살을 했다는

비보가 전해집니다.

우리는 압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권씨 아저씨에게 샀던 책들은

아버지를 위한 책이 아니라 아저씨를 돕기 위한 책이였음을요,

아버지는 권아저씨가 그리울 때면 그 책들을 꺼내 어루만지곤 했습니다.

권씨 아저씨가 아버지의 학교 선배였는지

아님 일찍 은퇴하신 직장 동료이셨는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아저씨가 들고 다니던 가방 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졌던 삶의 무게를

클라라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저씨에게서 샀던 나폴레옹 위인전 과 김찬삼 교수의 여행기에서 읽었던

코르시카 섬으로 오진사 댁 세 딸과 큰 사위가 여행을 왔습니다.

산 중 마을,

목장 한 가운데 세워진 코르시카 양식의 돌집에서

아버지를 그리워 하며 이 글을 씁니다.

*****

프랑스에 온 지 한 달 반이 지났습니다.

자매들의 헌신적인 구박으로 조금씩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며 건강을 되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