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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 추구한 의회주의자… 후배들에 늘 “국민 마음부터 읽어라”
입력 2021-05-10 03:00수정 2021-05-10 04:56
[이한동 前총리 1934∼2021]‘살신구국’ 강조한 현대 정치사 巨木
“자신을 죽여 나라와 국민을 살리려는 살신구국(殺身救國)의 역사적 소명의식에 투철한 사람이 정치인이 돼 국가를 맡아야 한다.”
격동의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여야를 아우르며 소통과 통합을 추구했던 대표적인 정치 원로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2018년 발간한 회고록 ‘정치는 중업(重業)이다’를 통해 남긴 글이다. 이 전 총리는 정치적 조언을 구하러 찾아온 후배 정치인들에게도 “항상 자신의 정치색을 따지기에 앞서 국민의 마음부터 읽으라”고 당부했다. 총리, 장관, 정당 대표 등을 지낸 이 전 총리는 한국 현대사에 남을 여정에 8일 마침표를 찍었다. 향년 87세.
○ 판사, 검사 거쳐 6선 정치인으로
고인은 1934년 경기 포천군 군내면 명산리에서 8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이 전 총리는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군 복무 중인 1958년 고등고시 사법과(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군 법무관으로 제대한 뒤 서울지법에서 판사로 일했다. 이후 변호사를 거쳐 검찰로 옮긴 뒤 서울·부산·대전지검에서 일했다. 훗날 고인은 총리 재임 시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를 다 해보며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그 어느 때보다 사명감이 투철하고 열정적이던 시절”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전 총리는 검사장 진급을 앞두고 정계 입문 권유를 받고 “고향이 나를 부르고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한다면 험난하더라도 그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며 정치인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1981년 고향인 포천에서 11대 국회의원이 된 고인은 16대까지 내리 6선을 지냈다.
○ ‘통합과 대화’ 강조한 정치 일생
고인은 국회에서 여야 협상을 맡는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만 세 차례 지냈다. 1987년 6·29선언과 직선제 개헌, 1990년 5공 비리 청산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증언, 1993년부터 시작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개혁 입법 등의 과정마다 고인은 원내총무로 활약했다.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힌 어려운 협상에서도 대화를 통해 타협을 이끌어내 ‘이한동 총무학’이라는 말이 생겼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고인의 원내총무 시절에 대해 “수많은 악법들이 민주적인 법으로 바뀌었다. 입법사(史)에 남을 큰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1995년 국회부의장으로 일할 때는 여당의 정당 공천제 폐지 법안 처리를 막으려는 야당 의원들이 8일 동안 고인의 집을 점거하는 일도 벌어졌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9일 조문 뒤 “점거하러 온 야당 의원들에게 술상을 차려줬던 멋있는 분이었다”며 “정치라는 건 서로 타협하고 협치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고인은 생전 당시 상황을 두고 “그동안의 총무 경험에 의하면 어떤 최악의 협상 결과도 가장 매끄럽게 처리된 최선의 날치기보다 낫다”고 회고했다.
오랫동안 ‘준비된 대통령’ 후보로 꼽혔던 고인은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다. 1999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 총재를 맡았던 고인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김대중 정부의 총리를 지냈다. 입법·행정·사법부를 모두 거쳤던 고인은 생전 회고록에서 “정치권력이란 스스로 아름다운 멍에를 지는 일”이라며 “멍에를 짊어진 소는 늘 주인(국민)을 위해 땀 흘려야 하고, 그 직을 그만둔 뒤에도 무한 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경석 coolup@donga.com 허동준·전주영 기자
경력 :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판사, 검사, 변호사
제11대~ 16대 국회의원(6선)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국회부의장
제43대 내무부 장관
신한국당 대표
신한국당 상임고문
한나라당 대표위원
제33대 국무총리
자유민주연합 총재
새누리당 상임고문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미래통합당 상임고문
국민의힘 상임고문
이한동 전 국무총리 별세…향년 87세 / SBS
•May 8,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X8Qhd2qfkOc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향년 87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이 전 총리는 판검사를 거쳐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당선된 뒤 내리 6선 의원을 지냈고, 내무장관,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대표, 자민련 총재 등 정관계 요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2년 2개월 동안 국무총리를 역임했는데,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 최초의 국무총리였습니다.
1934년 12월 5일 경기도 포천군(현 포천시) 군내면 명산리에서 아버지 이정호(李貞鎬)[18]와 어머니 평강 채씨 채병숙(蔡秉淑)[19] 사이의 4남 4녀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29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판사로 일하다가 검사로 전직하였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사직하고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연천군-포천군-가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홍성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복당하여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이후 2021년 별세하기 전까지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상임고문이었다.
2021년 5월 8일 낮 12시 30분 쯤,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 향년 86세이며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조남숙 여사와 아들 이용모(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며느리 문지순(동덕여대 영어과 교수)
딸 지원 정원, 사위 허태수 GS그룹 회장과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등이다.
사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대중이 생전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한 두명 중 한명이다. 나머지 한명은 김종필.
김대중이나 김종필이나 자타가 공인하는 박식한 정치인들인데 이한동도 그에 못지 않았다고 한다.
이한동 前총리, 국립대전현충원 영면
고향 포천 생가 앞마당서 노제
"격동의 시대 남긴 업적 역사에 기록"

11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 이한동 전 국무총리 안장식에서 참석자들이 이 전 총리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안장식에는 유족과 이 전 총리와 가까웠던 정치권 인사 40여 명이 참석했다. 대전=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1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이한동 전 국무총리 안장식에서 현경대 전 의원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현 전 의원은 “87년 동안 힘들고 바쁜 세월을 달려오셨다”며 “격동의 시대, 변화와 발전의 시대에 정치의 주역으로 남긴 큰 업적은 역사에 기록돼 후대에 전해질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고인은 현승종 정원식 전 국무총리 등과 나란히 현충원 묘역에 안장됐다. 소박한 장례식을 원했던 이 전 총리와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간소하게 진행됐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나선 안장식에는 유족과, 이 전 총리와 함께 정치권에서 동고동락했던 4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장례 첫날부터 빈소를 지킨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도 가족들 뒤에서 발인식부터 안장식까지 자리를 지켰다. 고인의 국회의원 시절 정책비서였던 유 의원은 “이 전 총리를 모셨던 보좌진 중 내가 제일 막내였는데 이렇게 떠나시니 내 정치인생의 한 막이 마무리된 기분”이라며 “마음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6시경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발인식에는 상주인 장남 이용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사위 허태수 GS그룹 회장과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등이 참석했다. 고인의 시신이 운구차에 실리자 유족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흐느꼈다.
이날 발인식을 마친 뒤 고인을 실은 운구차는 장례식장에서 경기 포천시 군내면 명산리 고인의 고향 생가로 이동했다. 이어 고인의 생가 앞마당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북어포와 사과, 배를 올린 단출한 제사상에 고인이 생전에 즐기던 ‘한산 소곡주’가 제주(祭酒)로 올려졌다. 유가족과 친지, 이웃 주민 등은 고인의 영정 앞에 술을 따라 올렸다. 노제에는 박윤국 포천시장도 참석했다. 박 시장은 “포천의 큰 별이 지셨다. 고인은 포천시민이 큰 어르신으로 여기던 분이다. 시민을 대신해 노제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노제를 치른 뒤 운구차는 고인의 모교인 청성초등학교를 잠시 들렀다가 화장을 위해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했다. 화장을 마치고 유골함에 담겨 나온 고인의 유해를 받아 든 유족들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대전=강경석 coolup@donga.com / 포천=조응형 기자
국무총리이한동신도비
國務總理李漢東神道碑
국무총리이한동신도비(國務總理李漢東神道碑) 제막식
우종철 작가 비문 내용 설명
2024년 11월 2일 포천시 군내면 수원산 아래 창주원
비제(碑題)
국무총리고성이공한동신도비명병서
(國務總理固城李公漢東神道碑銘竝序)
서문(序文)
(정면에서 볼 때, 좌측 측면과 후면에 연결)
무릇국가와사회를위해忠孝兼全을독실하게하는이는天福을받고후손에게福祿을내린다는것은마치符信이서로합쳐지는것과같다지금세상에서이러한偉人을찾아보면德行이높고人望이두터운李公이바로그런분이다公의諱는漢東字는聖初號는雲天이다본관은固城으로고려문종때호부상서를지낸李璜을중시조로하고조선광해군때병조참판贈이조판서를지낸滄洲公諱成吉이十三代祖이며조부諱基洛은상업으로집안을일으켰다公은一九三四年十二月五日아버지諱貞鎬와어머니平康蔡氏秉淑의장남으로四男四女중셋째이니포천군군내면수원산아래명산리에서태어났다사형제모두서울대학교를졸업했다公은어려서英悟하여조부로부터한학을배웠고자라면서세상을구제할度量과德을키웠다경복고교와서울대법대를졸업하였고一九五六年第十회고등고시사법과에합격하여군법무관에이어판사로일하다가검사로전직하였다二十七歲에豐壤趙氏南淑에게장가드니趙成九의따님이다부인趙氏는천성이곧고信實하며善을쌓아만인의어머니상으로손색이없는분이다一男二女를낳았는데아들龍模는南平文氏志淳을배필로삼았다장녀智媛은金海許氏兌秀에게차녀晶媛은蔚山金氏載昊에게출가하였다세가정의후손이모두열한명으로多福하다公은天道無親의가르침에따라風度가넓고컸으며사람들이모두강직하고정의롭다말하였다가정을다스림에는慈愛와儉素를중시했고喜怒를안색에나타내지않았다政官界에서는恪勤하여規範을넘지않았으며政事가추진력이있었다名望이크게떨쳐당시사람들이雲集하여公과교류하였다一九八一年서울지검刑事一部長을끝으로정계에입문하여六選국회의원을거치면서집권여당의黨三役을역임했으며내무부장관과원내총무三回국회부의장한나라당대표자민련총재등을거쳐二千年第三十三代국무총리에취임하였다대화와타협을존중해최악의타협이최선의날치기보다낫다는정치신념을펼쳐이한동총무학이란신조어를낳았으며내무부장관으로국법질서확립에진력하였고국무총리로민생우선행정을정립하였다公先私後와外柔內剛한천품이벼슬살이에서겪는宦海風波의고단함을순항으로이끌었다二千四年정계은퇴후노년에도悠悠樂天하는홍안백발의신선과같았다手不釋卷하였으며나라걱정에勞心焦思하시니모두말하기를絶倫의국가원로라하였다二千二一年五月八日에忽然히세상을떠났으니享年八十八歲이다국립대전현충원에安葬되니평소에바라던대로였다오호라!한마음으로四海의憂愁를해결하려고至公無私한삶을살아백세의師表가되었다公은평소에“정치는重業이며정치인은개인의榮達을위해취할직업이아니다자신을죽여나라와국민을살리려는殺身救國의소명의식에투철한사람이국정을맡아야한다”“정치권력이란스스로아름다운멍에를지는일이다멍에를짊어진소는늘주인인국민을위해땀흘려일하고그직을그만둔뒤에도무한봉사해야한다멍에를짊어진자가돈과명예를탐한다면국가발전은멀어지고본인도결국에는불행해진다”라고주장하였다公은자신에게는가을서리처럼엄격하고남을대할때는봄바람처럼부드럽게한다는臨己秋霜待人春風이란말이너무나잘어울리는분이었다비록作者가필력이鄙拙하여밝은뜻을撰하기에부족하지만誠心을다하여公이실천한厚德載物의行義를후세에전하지않을수있으랴!감히머리조아려절하며銘을올린다
명문(銘文)
(정면에서 볼 때 우측 측면)
天眷聖朝 水源山麓(천권성조 수원산록)
如龍如鳳 賢人繼蹟(여용여봉 현인계적)
穎悟好學 自强不息(영오호학 자강불식)
先跡連結 爲國柱石(선적연결 위국주석)
見利思義 以理制慾(견리사의 이리제욕)
欲窮千里 見于天德(욕궁천리 견우천덕)
嗟慕領公 朝警夕惕(차모영공 조경석척)
海不讓水 與民一鬲(해불양수 여민일격)
惠重之政 伸張國格(혜중지정 신장국격)
從者如雲 重業勳籍(종자여운 중업훈적)
汗馬之勞 所立實赫(한마지로 소립실혁)
如明日月 萬世標的(여명일월 만세표적)
荷天之寵 享有九錫(하천지총 향유구석)
世稱國老 名流萬億(세칭국로 명류만억)
卓越志氣 代代承覓(탁월지기 대대승멱)
銘玆幽碑 照亮無極(명자유비 조량무극)
하늘이나라돌보사 수원산기슭아래
용과봉황같은 현인내려주었도다
총명하고학문을좋아하여 힘써쉬지않으시더니
조상의업적을이어 나라의기둥되었도다
이익을보면의로움을생각해 하늘의이치로욕망을제어했으며
천리밖을궁구하여 하늘의덕성을보았도다
아,그립구나!우리총리님! 아침저녁경계하고두려워하여
바다가모든물을포용하듯이 국민과한솥정치펼치셨도다
은혜롭고신중한정책으로 국격을신장하였고
따르는사람구름같아 정치중업을훈적에남겼도다
힘을다한공로로 세운바실로우뚝하였고
해와달처럼밝으니 만세의표준이되었도다
하늘의은총입어 구석의은전을향유하였고
나라의큰원로라칭송하사 그이름억만년전하리라
탁월한지조와기상은 대대로이어서찾으리이다
이비석에명을새겨전하니 영원토록밝게살펴보소서
韓國漢詩協會監事 禹鍾哲 謹撰
世界文化藝術協會長 李武鎬 謹書
西紀二0二四年甲辰十一月
家族一同 謹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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