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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비
완도 생일도
진도 모세의 길
밀양 홍제사( 密陽 弘濟寺) 표충비( 表忠碑)
홍제사(弘濟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의 본사인 양산 통도사의 말사이며 전통 사찰 제59호로 지정되었다.
홍제사에는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리는 밀양 표충비가 세워져 있다. 나라에 국난이 있을 때마다 ‘땀 흘리는 비’로 알려진 밀양 표충비는 1742년(영조 18) 사명대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사명대사의 5대 법손(法孫)인 남붕(南鵬)이 세웠다고 전한다.
홍제사가 있는 밀양시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출생지이며 사명대사가 창건한 백하암(白霞庵)이 있던 곳으로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를 비롯하여 사명대사와 관련한 역사 유적지가 많다.
밀양 '땀 흘리는 표충비'
밀양 표충비(密陽 表忠碑)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지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비석이다.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5호 표충비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앞면 윗쪽에 새겨 놓은 비의 명칭은 유척기의 글씨이다.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사명대사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전해진 결과라 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사명대사 생가와 사랑채 사명당
경남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 ,400 (고라리)
조선 중기 고승 사명당(1544∼1610)이 태어난 곳이다.
조선중기의 고승,호는 사명당(四溟堂) 송운(松雲) 종봉(種峯),성(姓)은 임(任),자는 이환(離幻),
법명(法名)은 유정(惟政),본관은 풍천(豐川),수성(守成)의 아들,경남 밀양 출신,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속명은 응규이며 호가 사명당이다. 중종 30년 풍천 임씨 집안에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여 직지사 신묵의 제자가 되었다. 금강산에 들어가 수도하던 중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병을 모아 의병장으로서 활약하였다. 1593년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되었던 평양성 탈환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는 그의 공을 크게 인정하여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내렸으며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광해군 2년(1610) 설법을 마치고 세상을 떴다. 저서로 『사명당대사집』7권과 『분충서난록』1권 등이 있다.
'땀 흘리는 비석' 밀양 표충비…"땀 1리터 흘려"
/ 연합뉴스TV (YonhapnewsTV)
https://www.youtube.com/watch?v=kXpnavkekxU&t=11s
Nov 19, 2019
'땀 흘리는 비석' 밀양 표충비…"땀 1리터 흘려"
[앵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경남 밀양 표충비가 최근 또 땀을 흘려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온도차로 생기는 '결로 현상'으로 추측되지만, 주민들은 신비로운 현상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휘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사람들이 절 안에 세워진 비석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표충비라고 불리는 비석을 보기 위해섭니다. 뒤에 보이는 이 표충비에서 지난 18일 새벽 4시부터 약 5시간 동안 1리터가량의 물이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비석 표면에 물방울이 맺혔는데, 마치 사람이 땀을 흘리는 모습 같았습니다.
[박금창 / 밀양시 하남읍] "(표충비가) 나무도 아니고 돌일 텐데 거기서 땀이 난다고 하면 참 희한한 일이 아닙니까."
조선 영조 18년, 즉 1742년에 세워진 표충비는 조선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사명대사의 높은 뜻을 비석에 새겼습니다.
[범철 / 밀양 홍제사 주지스님] "사명대사님의 살아생전 공적 같은걸 해놓았고 뒷면에는 서산대사님의 공적을 해놓았습니다."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그 조짐을 미리 알려준다고 전해집니다. 민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지금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뿐만 아니라 3·1운동, 8·15 광복, 6·25 전쟁,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성사 때도 땀을 흘렸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표면에 이슬이 맺히는 '결로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지만, 땀의 양이 다섯 말(90 리터) 이상씩 흘러내리는 등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신비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고휘훈입니다. (take5@yna.co.kr)
밀양 표충비(연합뉴스DB)
무안지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재는 돌담이 둘러진 비각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린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내용, 정유재란 이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 3천여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조선 영조 18년(1742)에 세운 비로, 이의현이 비문을 짓고, 김진상이 글씨를 썼다. 앞면 윗쪽에 새겨 놓은 비의 명칭은 유척기의 글씨이다.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사명대사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전해진 결과라 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땀 흘리는 비석 밀양 표충비…16시간 동안 비오듯 땀 흘려
- 전국
- 입력 2021.01.25 15:5
- 이천운 경남지사장 woon3166@ibulgyo.com
땀 흘리는 비석 표충비가 모셔진 표충비각
나라에 큰 일이 닥칠 때 마다 땀을 흘린다고 전해지는 밀양 표충비가 1월22일 오후1시부터 많은 땀을 흘려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1월23일 새벽 5시까지 이어졌으며 아침 7시가 돼서야 완전히 멈췄다. 표충비각을 관리하고 있는 홍제사 주지 범철스님은 “22일 오전까지 관찰되지 않았던 땀 흘리는 현상이 오후 들어 관찰되기 시작했으며 그 양이 어림잡아 2리터 가량이었다”고 전했다.
마치 사람처럼 땀을 흘리고 있는 표충비
정확하게 계량한 것은 아니지만 땀이 흘러내린 시간과 비석아래 흥건히 고여 있던 수분의 양으로 미루어 적은 양이 아니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범철스님은 “겨울철 온도변화에 따른 결로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결로현상의 경우 물방울이 맺히는 정도이지 마치 사람이 땀을 흥건히 흘리는 것처럼 많은 양의 수분이 흘러내려 비석 주위에 고이는 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예로부터 표충비는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석 전면에 자연적으로 땀방울이 맺혀서 구슬땀처럼 흘러내린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라고 불리기도 한다.
때로는 비석의 4면에서 이슬처럼 몇 시간씩 계속해서 흐르다가 그치는데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과 조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고 전한다.
밀양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다.
표충비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1910년 국권 피탈, 1945년 해방, 1950년 6.25 동난, 1961년 군사정변 등 30여 차례에 걸쳐 국가적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땀 흘리는 현상이 관찰됐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5호인 표충비는 1742년 10월 사명대사의 5대손인 남붕선사가 경상북도 경산에서 돌을 가져다가 현재의 자리(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세운 것으로 좌대를 포함한 총 높이는 380cm, 비신의 높이 275cm, 너비 98cm, 두께 56cm의 큰 비석이다. 통도사의 말사인 홍제사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는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비석의 정면에는 ‘유명 조선국 밀양 표충사 송운대사 영당비명병서(有明朝鮮國密陽表忠祠松雲大師靈堂碑銘幷序)’를 새기고, 뒷면과 옆면에는 ‘서산대사 비명’과 ‘표충사(表忠祠) 사적기’를 음각했다.
또한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승병활동을 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 내용, 선조 임금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표충비는 비석 3면에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행적을 기록하여 일명 삼비(三碑)라고도 불린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몸통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이며, 비의 몸통은 검은 색 대리석을 사용했다.
비문은 영중추부사 이의현이 짓고, 홍문관 부제학 김진상이 글씨를 썼으며, 판중추부사 유척기가 전서했다.
홍제사는 1742년 사명대사의 5대 법손 태허당 남붕선사가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四溟大師)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사당 수호사찰이다.
현재의 터에 표충비와 사당을 세우면서 사당을 지키는 수호사찰 역할을 했으나 사당이 영정사(지금의 표충사)로 옮겨지면서 비각의 보호와 관리를 위해 작은 원당과 삼비문(三碑門)을 세운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이천운 경남지사장 woon3166@ibulgyo.com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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