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책반환' 모의장례식

2024. 7. 3. 06:39Lessons

'이문열 책반환' 모의장례식

2001년 11월 3일

조선일보

 

'이문열 책반환' 모의장례식

 

2001년 11월 3일 오후 2시쯤 경기도 이천시 부악문원 앞에서 열린 이문열 작가 책 장례식에서 한 어린이가 관(棺)처럼 묶은 소설책 앞에서 '영정'을 들고 걷고 있다.어른들이 영문도 모르는 어린이에게 시킨 일이다. 당시 이문열 작가는 강연차 지방에 내려간 상태였다고 한다./조선일보DB

 

◆사진설명 : 한 작가의 소설책을 관(棺)처럼 묶어 버젓이 ‘장례식 ’을 치른 이들에게 이날 아무 영문도 모르고 ‘영정 ’을 들었던 어린 딸은 십여 년 뒤 무엇이라 물을 것인가.

"이문열씨 책은 독극물, 10원에 팔겠다"…
10세 여자 어린에에 영정 앞세워

그것은 전대미문의 문화적 참사였다. 3일 오후 2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에 있는 소설가 이문열(53)씨의 부악문원. 눈 시리게 청쾌한 가을 하늘 아래 설봉산 만산홍엽이 불타고 있는데, ‘이문열 돕기 운동’이라는 모임의 외지인 30여 명이 느닷없는 가장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그들은 전국 150 명 회원으로부터 거두었다는 이씨의 소설책 수 백권을 관의 형태로 묶어서 ‘운구’했다. 맨앞에는 10살 쯤 돼 보이는 여자애에게 이씨의 책 표지사진을 모아 만든 ‘영정’까지 들려 세웠다. 광목과 상복, 흰장갑, 그리고 백색 조화도 갖춰져 있었고, 피켓이 여러 개였다.

‘홍위병 발언 사과하라’, ‘아직도 시민단체가 홍위병으로 보이세요’, ‘젖소 부인과의 관계를 밝혀라’, ‘입장 바꿔 생각해봐 내가 니를 개라 하면 기분 존나’….

이씨 내외는 이날 대구에 강연차 내려가고 없어, ‘주인 없는 빈집’으로 관이 들이닥친 셈이었다.

이씨는 지난 7월부터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 등의 신문 시론에 대한 시비, 그리고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곡학아세’ 발언 등으로 시달려 왔다. 그 와중에 이씨의 논조와 정치적 입장에 비판적인 일부 독자로부터 이씨의 소설을 반환하겠다는 소동이 빚어졌고, 7월18일 ‘책반환’을 본격화하겠다는 집단 운동이 시작, 이날 마침내 실행에 옮겨진 것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이장 홍영식(47)씨가 이들을 막았다. “상복 입고 마을 길을 통과하지 못한다. 당신네 사정은 모른다. 우리 동네에도 몇 백 년을 지켜온 동네법이 있다.”

결국 ‘장례식’은 이씨 집앞인 동네어귀에서 진행됐다. 모임 대표라는 화덕헌(37)씨는 부산 해운대에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시종 핸드 마이크로 행렬을 지휘했다. “(이문열의) 극악무도에 분노한다”, “존경받는 문인이기에 더욱…”, “그의 책을 장송하려 한다”…

좌파 논객으로 알려진 진중권씨의 얼굴사진을 가면처럼 쓴 사람을 세워놓고, 마치 그의 글을 대독하듯 한 연설도 있었다. 언론학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발행하는 잡지 ‘인물과 사상’의 독자담당이라는 조성용(38)씨는 ‘격려사’를 통해, “우리는 세계 문화사에 유례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문열 그가 유례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언어폭력, 말의 테러, 정치선동을 일삼기에 스스로 문학비판 대상에서 문학안티 대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장례식’을 마친 뒤 “책들을 고물상에 싣고 가 단돈 10원에 팔겠다”고 말했다. 회사원이라는 심병호씨는 “이 책들은 독극물이니 오히려 고물상에 만원을 주고 부탁하겠다”고 ‘긴급제안’했다. 앞서 이들은 이문열씨 집쪽을 향해 “책을 반납 받겠는가”라고 물었으나 대꾸가 없었다.

이씨는 이미 “책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대리인을 통해 전달했고, 사유지인 ‘부악문원’에 들어오지 말 것을 요구하는 외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이씨는 “폭력적인 구호를 사용하는 걸 볼 때 책을 반환하려는 사람들은 독자가 아닌 운동가들이라고 생각한다”고 책을 받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그의 집 앞에는 ‘민주참여네티즌연대’라는 모임 회원 10여 명이 ‘홍위병의 지식인 테러와 언론탄압 행위 중단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지켜보고 있었다. 충돌은 없었다.

‘회원’ 보다 보도진과 경찰 수가 몇 배 많았던 ‘장례식’ 말미에 화 씨가 성명서를 읽는 동안, 그의 등뒤로 콩대를 가득 실은 한 농부의 경운기가 지나갔다. 탈탈탈탈….

전 세계에 오로지 한국에만 있을 진풍경은 한 시간만에 끝났다. 한 때 그들의 영혼을 살찌웠을 ‘국민작가’의 책은 이젠 ‘독극물’이 됐다. 그들 스스로는 “상식적인 저항”이며 “준엄한 함성”이라고 했다.

맞선 쪽에서 볼 때는 “홍위병 테러”요, “살아 있는 작가의 생매장 시도”였다. 이날따라 깊고 무심한 하늘엔 한국 문화의 장래를 절망케 하는 검은 만장 같은 징후가 떠돌고 있었다. 피켓 든 자만 남고 펜과 붓을 쥔 자는 이땅을 떠날 것 같은.

(이천=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방현철기자 banghc@chosun.com)


2001.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