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광복회장에게···"1919년 건국설 거두시라" [이인호 칼럼]

2024. 8. 19. 10:01Others...

<이종찬신임 광복회장님께 보내는 공개서한>. 이인호 칼럼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께 보내는 공개서한>

이종찬 광복회장에게···"1919년 건국설 거두시라" [이인호 칼럼]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주러시아 대사)

입력 2023-06-30 08:52 | 수정 2023-06-30 08:52

 

▲ 이종찬 제23대 광복회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축사를 들으며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


광복회 회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습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실 뿐 아니라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시었던 이시영 선생의 종 손자이시며 우리 국군 간부 출신으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장 역임한 경륜을 갖추신 분이니,
그 간 불미로운 일로 오래 시달렸던 광복회가 우리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모임으로서의 본래의 정신과 위상을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하실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난 6월 22일 취임식에 뒤따른 인터뷰 기사들을 보고,
저는 많은 우국시민들과 함께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보도가 얼마나 정확했던 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회장님과 보도 기자들의 역사의식은 크게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정체성만 바로 서면 나라가 정상화됩니다”라는 윤석열 대통령,
아니 나라가 정신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크게 걱정하는 모든 국민들이 원하는 국가정체성 바로 세우기와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역사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가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간 회장님과 저희 집안간, 망국의 회한을 품고 사셨던 외조부님 대부터 쌓아온 깊은 우의에 혹시라도 손상이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이 공개서한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공과 사가 갈등을 빚을 경우는, 공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우리 조상들의 공통된 가르침 이시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1919년 건국은 역사 왜곡

첫 번째로 지적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언제 독립국가로 세워진 나라인가 하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는 회장님의 취임사 속 표현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라는 현행 헌법 전문이나 마찬가지로 독립의지와 민주공화국의 이념적 기조가 그 때부터 이어져 왔다고 해석되는 한에서는 무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의 재건 또는 부활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이승만 대통령 자신도 정부선포식에서 “민국 30년”이라는 표현을 쓴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 역사적 사실이 몇 몇 사람의 발언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948년 8월 15일이 아니라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출범이 우리 대한민국의 수립이었다는 주장은 분명한 역사 왜곡입니다.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정부이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능을 내외로 인정받는 정식 국가가 아닙니다.
이승만 박사나 김구선생은 임시정부를 우리 망명 임시정부로 인정받으려 백방 노력했지만, 어느 나라도, 심지어는 우호적이었던 장개석 정부조차도 인정을 거부했습니다.

국내에서 일제의 압박을 받고 살던 한국 백성 절대다수는, 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북한측이 “남조선이 1948년 친일파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또는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하면 같은 1948년에 인민민주공화국을 선포한 북한과 동격으로 추락하기 때문에,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삼아야 하고 광복회에서는 연호까지 서기 대신 '대한민국 104년' 식으로 그쳐 쓰겠다는 발상은, 망상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단기를 서기로 바꾼 것은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국가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결정이었는데,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맞게 독립정신을 새로이 해석해 나가야 할 광복회가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키겠다는 복고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1919년 건국설은, 문재인 같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주장하는 맹목적 통일지상주의자들 일부가 민족지상주의를 내세워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국민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내놓은 주장임을 모르십니까?
임시정부 시절에는 남북한의 구분이 없었고 함께 참여했던 공산주의 계열의 임정요인들이 자유민주주의 계열의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직에서 사임시킨 일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1919년 건국설이 역사학계 대세?
천만의 말씀입니다

두번째.
어느 면에서 더 큰 문제는 일제 지배시대와 해방과 대한민국 건국과정을 직접 겪으며 자라났던 이 회장님 같은 원로들의 잘못된 역사인식이 후속세대에 미치는 해악입니다.

이 회장님의 취임을 보도하는 매체들 다수가 1919년이 대한민국의 원년이라는 회장님 주장이  '일부 뉴라이트 보수층'의 견해와는 다르지만, '역사학계 전반'의 입장은 그 쪽이라는 식으로 쓴 것을 보고, 또 다른, 더 우려스런 차원에서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어느 '역사 학계'를 그들은 말하는 것이지요?
해방 직후부터의 역대 우리 역사학계 중진들은 물론 세계 어느 이름있는 역사학자, 심지어는 대한민국에 적대적이었던 공산권 학자들 까지도 대한민국이 1948년이 아니고 1919년에 태어났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이 '사실'이 아니고 '견해'나 '주장'이면 되는 듯 한 위험한 가정이 새 세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급인 기자들 생각 저변에 팽배해 있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는데, 결코 반대한민국적 이실 수가 없는 이종찬 회장께서 그에일조를 하고 계신 셈입니다.

국가적 정체성이 바로 잡히려면 올바른 국민의식이 형성되어야 하며, 그것은 역사를 일어난 대로 기억하고 인식할 때야 가능해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독립을 원하고 주장하며 선포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독립국가 국민으로서 살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염원으로 현실을 지배할 수 있다면, 우리가 왜? 망국의 백성으로 전략했었겠습니까?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선포는 독립투쟁의 시발점이지 종착점인 광복이 아니었습니다.
몇몇 공명심 강한 정치인이나 역사학도들이 1919년이 대한민국 탄생의 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적으로 공인되는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임시정부를 임시정부라 불렀고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같은 이름을 가진 조직들이 우후 죽순처럼 생겨났던 것은 임시정부는 임시정부였지 국민에 대한 통솔권을 가진 국가기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대한 승리로 우리를 해방시킨 미국이나 소련 등 연합국들도 우리 임시정부를 임의단체로 밖에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뿐 아니라 미군정으로부터도 해방 되어  독립국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우리 힘으로 된 일이 아니라 일본에게 승리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승전세력이 우리의 독립의지를 인정하고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독립국가로서의 탄생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지 임시정부가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광복회의 원천인 독립투사들은 바로 큰 희생으로 그 독립정신을 지켜내며 우리가 결코 일본의 속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세계만방에 인지시킨 공로로 마땅히 감사와 추앙을 받는 것이지, 임시정부를 세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힘으로 우리 스스로가 일본에서 해방되고 독립을 성취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분단이라는 기상천외의 민족적 비극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만, 우리 민족 어느 누구가 그것을 바랐겠습니까?

이 종찬 회장님과 저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 “새나라의 어린이는…” 하는 동요를 부르며 자라난 세대입니다.

우리가 날자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임시정부 탄생이 아니라 1948년 8월 15일을 국경일로 경축해야 하는 것은 그 때 부터야 비로소 우리는 독립국가 국민으로서 나라의 주인이 되어 자신이 만든 법에 따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공산당 조직을 통해 소련의 실질적 지배를 받고 있던 몇 몇 공산권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50여개 국가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반토막 나는 것 보다는 전체가 공산화된 것이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는 있었으며, 그들은 결국 대한민국의 반역자가 되었고 38선 북쪽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져 조만식 선생 같은 원로 애국자가 순국했지만 우리가 통일을 애타게 부르짖는다고 냉전이 시작된 국제정체적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련의 붕괴가 보여주었듯이 세계공산주의 체제가 스스로 파산을 선고한 지금까지도, 아직도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그런 반역적 생각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신생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북한과 대조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1919년이 아니라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탄생일로 기린다고 해서
독립운동가들이나 광복회원들의 명예가 훼손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가 될  것입니다.
독립을 위한 국내외 각계각층의 끈질긴 노력과 희생 덕분에 36년이라는 긴 식민지 지배기간 동안에도 독립정신이 유지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독립이 가능진 것이고 그 분들의 투쟁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이전 보다도 그 후로 더 오래, 저 처절하게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독립기념일, 광복절, 건국절
세번째.
국경일의 내용과 명칭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국경일은 국민이 뇌리에서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 출범 당시 국경일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네 가지 였습니다.
국가니 독립이니 하는 개념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랜 시일동안 나라를 형성하고 살았다고 믿기 때문에 개천절이라는 상징성 높은 국경일을 제정했으며 3.1절과 제헌절의 역사적 의미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일이었습니다.

광복절 만이 대한민국 건국 당시부터 지금 까지도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광복”이라는 말이 지니는 이중적, 심지어는 삼중적 의미 때문입니다. 
1945년 해방이 가져다준 감격과 환희는 사실 대한민국 탄생 보다도 더 벅찬 감격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는 일본의 패망이 기대 밖이었었고  38선을 중심으로 하는 국토분단이 뒤따르리라는 것은 누구도 아직 몰랐으며 해방은 바로 독립, 곧 광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은 광복의 종국적 의미는 해방이 아니라 국권회복, 곧 독립국가 수립이지만 해방의 감격을 잘 알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립의 마지막 단계인 정부수립 선포일을 8.15 해방의 날에 맞추기 위해 일을 서둘렀습니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을 독립기념일로 부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명칭이 △삼일절 △개천절 등 “절”로 끝나는 국경일과 어감이 다르다는 이유로
△광복절로 개칭을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광복절은 해방과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함께 기리는 날인 것이며 올해 8.15는 엄밀하게 말해 “해방 78주년, 대한민국 수립 75주년 기념 광복절”인 것입니다.

이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 것은 광복절이라는 낱말이  가지는 그  이중적 의미 때문이었습니다.
6.25 전쟁 전까지는 광복절을 당연히 대한민국이 독립함으로써 “광복”이 이루어진 1948년을 기년으로 계산하여 기념했습니다.
예를 들어 1949년에는 제1회 광복절, 혹은 제1회 독립기념일로 기렸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 후로는 부주의 탓인지, 혹은 1948년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출범을 분단의 고착이라고 배격했던 좌익 측의 농간이었는지, 광복절을 1945년로 기산하여 경축하고 1948년 8.15는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진작 신생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경축하는 기념일은 사라진 셈이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때, 그에 더해 1919년 건국설이 갑작스레 대두하자  애국진영에서는 대한민국이 생일마저 빼앗김으로써 정체성이 훼손 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1948년 8.15를 아예 △건국절로 못박자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광복절을 1948년이 아니라 1945년부터 기산하는 데에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거나 아니면 지극히 소홀히 하는 용납 할 수 없는 무관심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광복절에 익숙해진 순진한 일반 국민은
△건국절이라는 새로운 명칭에 대해 생소함을 느껴 호응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광복절이라 부르는가 △건국절이라 부르는가, 이름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독립하여 세계 만방의 인정을 받고 오늘날 같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놓은 1948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건 △건국절이건 최대 국경일로 축하하고 기념하지 않으면
국가 정체성이 바로 설 수 없다는 점입니다.
1919년 건국설을 극구 주장하는 이른바 진보 좌파 측에서는 미국도 미합중국 정부 수립 이전인 7월 4일 독립선포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한다는 주장을 폅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식을 들어내는 교언일 뿐 입니다.
미국은 그 때 이미 각 주 별로 자치 정부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었지 우리 처럼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 남의 나라 법의 지배하에서 신음하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임시정부가 바로 우리가 축하해야 할 나라 수립이었다면, 우리는 왜 일제하에서 36년간 우리 말과 이름까지 빼앗기고 신음했으며 계속 독립투쟁을 하다가 희생을 당해야 되었겠습니까? 
임시정부의 모태는 3.1 운동이었음으로
△3.1절은 바로 임시정부를 포함한 모든 독립운동 세력을 추모하며 기리는 날인 것입니다.

■ '광복회'만 보지 말고 대한민국을 생각해주세요
이종찬 회장님,
저는 이종찬 회장께서 결코 반대한민국 종북이 되실 수 없다 함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극구 주장하시는 1919년 건국설은 반(反) 대한미국 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광복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려면 북한동포들이 우리와 함께 통일된 정부 아래서 자유롭게 살수 있을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는 광복은 아직도 3 번째 마지막 단계가 미완으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 2 단계인 대한민국 건국을 무시하고 1919년으로 상황을 돌려 놓는 듯한 일은 특히 1919년과 1948년을 모두 부정하는 북한체제와의 대결과 화해가 아직도 큰 숙제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결코 하지 않아야 될 일로 생각합니다.

제 말뜻을 오해 없이 헤아려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고 광복회의 큰 발전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