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2. 07:13ㆍKorean Arts
荒城의 跡 .李愛利秀
1928년에 발표된, 왕평(王平) 작사, 전수린(全壽麟) 작곡, 이애리수(李愛利秀) 노래의 창작 가요.
1928년, 이애리수 선생이 단성사에서 부른 노래로, 1932년 '황성의 적'이라는 제목으로 빅터레코드에서 정식 음반으로 발매.
한국 최초의 남성무용가 조택원(趙澤元)의 추천으로 동방예술단(東方藝術團)이라는 순회 극단의 효과 음악과 막간 반주 음악 연주자로 입단한 전수린이 어느 날 그의 고향인 개성에 들렀다.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달 밝은 밤,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만든 가락이다. 느린 3박자의 리듬에 요나누끼단음계(혹은 미야코부시 음계)로 만들어진 가요곡이다. 이 애수적인 멜로디가 전수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荒城의 跡 - 이애리수
https://www.youtube.com/watch?v=IC8fYLSPIO4&t=16s
1.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래에 말없이 눈물져요
2.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러러
세상에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3.
나는 가리라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 한없는 이 심사를 가슴속 깊이 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신파극단 취성좌(聚星座)의 서울 단성사(團成社) 공연 때 여배우 이애리수가 막간무대(幕間舞臺)에 등장하여 이 노래를 부르자, 객석에서는 재창을 외치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노래는 삽시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이애리수가 노래할 때마다 관중들도 따라 불렀다. 신경과민이던 일본경찰은 중지하라는 경고를 내렸다.
이 노래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불리게 되었고, 조선총독부는 이 곡을 금지시키고, 부르는 조선인을 족족 처벌하였으나,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일본에 대한 맞섬으로 이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후 1932년 이애리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레코드로 〈황성옛터〉를 취입하였고, 1개월 동안 5만장이 판매되었다.
이렇게 막간무대를 통하여 유행되기 시작한 이 노래는 이기세(李基世)의 주선으로 1932년 일본 RCA 빅타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그 뒤 이애리수는 여배우에서 가수로 환영받는 스타가 되어 전수린의 신곡을 계속 취입하게 되었다. 최초의 취입레코드 라벨에 인쇄되었던 곡명은「황성(荒城)의 적(跡)」이었다.
1933년에 이애리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배우 겸 가수였던 이경설은 〈고성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황성옛터의 가사를 그대로 가져와서 불렀으나, 〈황성옛터〉를 부르는 것이 금지가 되었듯이, 〈고성의 밤〉은 발매 즉시 치안방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처분되고 회수당하기도 하였다.
DPRK Music A-17 황성옛터
노래 전혜영
작사 왕평 작곡 전수린
*원창 이애리수 2009 년에 타계
https://www.youtube.com/watch?v=vV6dBoI5KyY
이 곡은, 작곡가인 전수린이 고향인 개성에서 연극공연차 들렀다가 비가 와서, 공연이없는 날 단원들과함께, 여관 방에서 무료함을 달래던 중 전날에 찾아가보았던, 송악산 아래의 폐허가되어버려서 잡초에 파묻혀 황량하기그지없는 만월대를 생각해보면서 마침 자신들의 처지와비슷한, 고려왕조의 서글픔과 애틋함을, 그날 즉석에서 악상을 떠올려 전수린은 기타를 튕겨내면서 오선지에 그려나갔고, 동료인 왕평은 노랫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인 1928년 서울 단성사에서 연극공연 도중의 막간시간에, 18세의 이애리수라는 가수가 이 노래를부르자 삽시간에 객석 곳곳에서, 관객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나라 잃은 설움을, 대성통곡하면서 분출시키자 임석하고있던 경관은 그 연극을 중단시켜버린 일이 있었고 이 노래는 조선민족의 감정을 자극시킨다는 이유로, 그후 한때 금지되었던 노래입니다!
그리고 한편, 이 노래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효시라는 점에서 역사상으로도 의미가있는 노래이기때문에, 웬만한 가수라면 누구나 다 한번쯤 불러보았을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노래가 애창곡이었던 박정희대통령과의 인연은!
"황성옛터" 의 "황성" 은 임금이 거처하는, 왕궁이 아니고 폐허가되어서 방치된, 황량할 "황" 이라는, 한자어를 당시,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이발을 해주던 청외대의 전속이발사에게 박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정정하여서 올바르게 설명을해주었다는 일화도있습니다!
그리고, 다시말해서 1932년 일본의 빅터레코드에서 정식으로 취입하여, 발매할때 이애리수라는 원곡가수가불렀던 이 노래의 곡명으로 "황성의 적" 이라고 표기하였는데 그후, 1959년 남인수가 부르면서 가요계관계자가 "황성옛터" 라는 제목으로, 노래이름을 바꾸어서 발표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황성" 이라는, 그 한자어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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