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浮石寺無量壽殿

2024. 8. 24. 09:37Wonderful World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浮石寺無量壽殿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 아미타불이 봉안된 사찰건물. 불전. 국보.

 

 

 

국보 제18호.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서 내부에 무량수불(無量壽佛: 무한한 수명을 지닌 부처)인 아미타불(국보 제45호)을 봉안하고 있다. 정면 가운데 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이 썼다는 기록이 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왔다가 귀경길에 부석사에 들러 쓴 것이라고 전한다. 한편, 부석사 무량수전 서쪽에는 부석(浮石, 일명 뜬바위)이 있는데 이 바위는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당나라 선묘(善妙)낭자가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역사적 변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부석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황산부석사개연기(鳳凰山浮石寺改椽記)」 등에는 창건연대를 676년(신라 문무왕 16)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창건 후 부석사는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병화로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경내에 있는 대석단(大石壇)과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이 9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음을 볼 때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량수전 동쪽 언덕 위에 있는 「원융국사비문(圓融國師碑文)」에는 원융국사(圓融國師)의 탄생-출가-대덕-왕사-국사-부석사-입적까지 총 2263자(마멸 161자)로 새겨져 있다. 원융국사는 1041년(정종 7)에 부석사로 들어와 화엄종통(華嚴宗統)을 이어받았고 입적할 때까지 부석사에 머물렀다.

 

이후 무량수전은 1358년(공민왕 7)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타 큰 피해를 입었고, 1376년(우왕 2) 진각국사(眞覺國師) 원응(圓應)이 고쳐 지었다. 1611년(광해군 3)에는 보가 비바람에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는데 이듬해 중수하면서 서까래도 함께 교체하고 단청도 다시 하였다. 「무량수전불상개금기(無量壽殿佛像改金記)」와 「무량수전미타존상개금기(無量壽殿彌陀尊像改金記)」에 따르면 1723년(경종 3)과 1767년(영조 43)에 각각 본존불의 금칠을 다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는 조사당과 함께 해체수리공사가 이루어졌다. 1969년과 1999년에는 기와를 교체하였으며, 2001년에 주변 정비와 함께 정밀실측조사가 실시되었다.

 

내용

부석사는 경사지를 따라 여러 단의 석단(石壇) 위에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범종각을 지나면 진입축이 꺾이면서 높은 축대 위에 안양루(安養樓)와 무량수전이 서 있다. 안양루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무량수전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무량수전의 누하진입(樓下進入)방식은 공간의 닫힘과 열림에 의해 호기심을 유도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량수전 앞마당에 올라 무량수전을 뒤로하고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풍경도 아름답다.

무량수전은 지대석, 면석, 갑석 등을 잘 다듬어 조성한 가구식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초석은 원형 주좌를 가공한 초석을 사용하였고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여 있으며 바깥에 출목(出目)이 있다. 주두는 하부가 곡선형이며 굽받침이 있다. 주두 위에는 첨차 하부에 연화두형(蓮花頭形: 일명 쌍S자형 곡선)이 조각된 소첨차와 대첨차를 반복하여 사용하였다.

 

가구 구조(架構構造)는 2고주 9량(梁) 형식이다. 툇보는 고주(高柱, 높은 기둥)의 머리부분에 결구되어 헛첨차가 받치고 있으며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가늘어진다. 툇보 머리는 소첨차와 십(十)자로 짜이면서 짧은 장여와 외목도리를 받도록 했다. 고주 위에는 공포를 짜서 충방(衝枋)을 결구하고 그 위에 초공(草工)을 놓은 후 대들보를 걸었다. 대들보 위에는 충방과 초공을 놓고 종보를 걸었으며, 소슬합장이 종보 위에서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추녀 하부에는 활주를 세워 받쳤다. 천장은 상부의 부재들을 모두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전돌(塼石)을 깔고, 불상 위에는 닫집(唐家)을 설치하여 장엄하였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이지만 내부에 모신 불상은 석가모니불의 수인(手印)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불상의 종류에 대한 논란도 있다.

 

특징

일반적인 불전은 건물 중심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향(向)과 같게 한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내부 바닥에는 본래 녹유전(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었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서방(西方)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량수전과 같은 평면 구성은 건물의 깊이를 확보하고 불단으로 향하는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구조적인 특징은 보와 도리 등 주요 가구재들을 단면 크기가 작고 곧은 부재를 사용하면서 뜬창방·뜬장여·충방·초공·귀잡이보 등 여러 부재들을 사용하여 보강한 것이다. 특히 보의 단면은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어 오래된 건축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비교할 때 장식적인 요소가 적으면서 목조 건축의 형태미와 비례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물 중 하나로서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과 함께 고려시대 불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건축물이다.

 

 

 

 

1957년, 이승만 대통령 내외, 경북 영주 부석사 방문

https://www.youtube.com/watch?v=CpUSLQPCnrg&t=93s 

 

 이승만대통령 내외의 경북 영주 부석사 방문 및 원주역 등 환영회를 기록한 흑백영화

 

榮州浮石寺無量壽殿

 

부석사의 밤 

https://www.youtube.com/watch?v=GPCU64rem9w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 은 국보 제18호 로 지정된 고려시대 목조건물이다.

국보 제45호 로 지정된 "아미타불" 을 봉안하고 있는곳이며,

"배흘림 기둥" 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 삼층석탑 언덕에 올라서면 저멀리 "태백산" 자락의 산등성이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고 있는 멋진 풍경을 만날수 있었다.

 

 

 

"일주문" 을 지나 아름다운 "은행나무길" 을 따라 올라가면 사찰에서 큰 행사가 있을때 깃발을 달았든 보물 제255호로 지정된 "당간지주" 가 나타난다.

 

 

"천왕문" 을 지나 한참을 올라가면 "부석사 무량수전" 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보물 제249호로 지정된 부석사의 "삼층석탑" 도 자리하고 있었으며, 눈앞에는 이곳에서 최고의 전망을 볼수 있는 "안양루" 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부석사" 의 또다른 명물인 "안양루" 는 주 불전인 "부석사 무량수전" 바로 앞에 있는 2층누각으로 누각 밑으로 들어가야 "부석사 무량수전" 을 만날수 있는 "누문(樓門)" 이기도 하다.

 

 

 

"안양루" 의 누각밑 누문을 통과하면 신라 문무왕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했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제 18호) 이 서 있고, 바로 앞에는 국보제 17호로 지정된 "석등" 의 아름다움을 만날수 있었다.

 

이곳 "부석사 무량수전" 정면 가운데에 걸려있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의 "편액" 은 고려 "공민왕" 의 친필이라고 하며, "공민왕" 이 홍건적의 침입때 안동으로 피난왔다 귀경길에 이곳에 들려 직접 쓴 친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배흘림기둥" 으로 유명한 이곳 "부석사 무량수전" 내부에는 "무량수불(無量壽佛)-무한한 수명을 지닌 부처" 인 "소조 아미타 여래좌상-국보 제45호" 을 봉안하고 있는데, 법당의 서편에서 동쪽을 보고 있는 특유의 형태의 불상이고, 나무를 깍아 본을뜬 다음 진흙을 붙여 만든 "소조(塑造)" 불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크고 오래된 불상이기도 하다.

 

 

"무량수전(無量壽殿)" 동쪽에있는 "삼층석탑" 에 올라서면 이곳 "부석사" 의 전경을 한눈에 볼수 있고, 아름다운 목조건물의 자태를 다시한번 감상할수 있기도 하다.

 

 

영주 "부석사" 에는 이절을 창건한 "의상대사" 와 당나라 "선묘낭자" 의 애틋한 창건설화를 안고 있는 '부석(浮石)-뜬돌" 이 서쪽 뒤편이 자리하고 있는데, 의상이 699년 불법을 닦으러 당나라에 갔을때 그집 딸인 "선묘낭자와" 인연을 맺었다고 하며, 의상이 10년후 신라로 돌아가자 사랑의 뜻을 이루지 못한 "선묘낭자" 가 바다에 몸을 던지게 되었고, "선묘낭자" 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지금의 "부석" 이 되었다고 하며, 사찰이름도 "부석사" 라고 불리어 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