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5. 03:38ㆍWonderful World
(한국)현해탄玄海灘
(일본)玄界灘 げんかいなだ GenKaiNada
이국땅 2016 .04.19. 04:1ㅔ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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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지도상 빨간 경계선이 현계탄임.
우리가 일컷는 현해탄玄海灘은 일본말로 겐카이나玄界灘 げんかいなだ GenKaiNada(겐카이나다)~
부산 앞바다 저만큼 대마도~
대마도 남단 우측 작은 섬이 지금 일본령 겐카이섬 ~ 현계도~
현계(玄界)는 경계선이라는 뜻으로 현계도까지가 조선령...
(한국)현해탄玄海灘
(일본)玄界灘 げんかいなだ GenKaiNada
강여울처럼(여울 탄灘)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바다라는 뜻의 현해탄玄海灘.
강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아주 빠르고 급하게 흐르는 곳을 "여울" 이라 하듯이...
우리 선조들은 일본과 마주한 바다를 지금처럼 대한해협大韓海峽이라 부른 것이 아니라,
원래 조선시대부터 현해탄玄海灘이라 불렀습니다.
현해탄玄海灘이라 함은 우리의 표기 방식입니다.
일문으로 玄海灘이라 쓴 것을 우리가 우리 식으로 "현해탄"이라 하고
일본에서는 玄界灘GenKaiNada(げんかいなだ 겐카이나다)라고 합니다.
대한 해협 남쪽, 일본 큐슈 후쿠오카 현(福岡縣) 서북쪽에 있는 바다로.
우리나라 부산과 큐슈(九州)를 잇는 통로로, 수심이 얕고 풍파가 심하다.
쓰시마(對馬) 해류가 북동쪽으로 흐르고 동해 해류가 남쪽으로 흐르며,
방어,대구,정어리 따위의 난류성 어류가 ....
두섬, 대마도(つしま=tsusima=對馬島)'는 한국땅
다산 칼럼 대마도는 한국땅 증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 후 가진 첫 연두 기자회견(1949년 1월7일)에서
“대일(對日) 배상 청구는 임진왜란 때부터 기산해야 한다”고 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마도(對馬島)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친 우리 땅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그 땅을 무력 강점했지만,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350년 전 일본인들이 그 섬에 침입해 왔고, 도민들은 민병을 일으켜 일본인과 싸웠다”며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일본인들이 뽑아다가 도쿄 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마도는 한국 땅’임을 천명할 근거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두룩하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최단거리가 49.5㎞로 일본의 후쿠오카(134㎞)보다 훨씬 가깝다. 1822년 편찬된 ‘경상도읍지’를 비롯해 ‘삼국접양지도’, ‘조선팔도지도 원본’ 등은 대마도가 부산 동래부의 부속도서로서 지리적·역사적·문헌상으로 우리 땅임을 분명히 했다.
●섬 곳곳에 항일 의병 전적비
더 의미 깊은 증언도 있다.
대마도의 초대 도주로 추앙받는 소 시게히사(宗重尙)와 관련,
“원래 우리나라 송씨로, 대마도에 들어가서 성을 종(宗)씨로 바꾸고 대대로 도주가 됐다”는 기록(1740년 간행된 동래부지)이다.
대마도의 일본명인 ‘쓰시마’의 유래와 맞물려 깊이 살필 만한 증언이다. 모든 고유명사에는 나름의 연원이 있다.
일본의 경우도 ‘동쪽의 서울’이란 뜻을 가진 도쿄(東京), 고대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유민들이 ‘새로운 국가’를 세운다는 결의를 담아 이름지은 ‘나라(奈良)’ 등 지명(地名)의 유래와 의미가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유독 ‘쓰시마’에 대해서는 딱 부러진 유래를 찾지 못해왔다. ‘쓰시마’가 왜 그렇게 불리게 됐는지, 일본 학자들도 답을 찾지 못하던 수수께끼를 쾌도난마로 풀어낸 사람은 고 양주동 동국대 교수였다.
원래 영문학자였지만, 차음(借音)문자인 향찰로 쓰인 신라시대 향가 연구와 해석을 일본인 학자들이 도맡아 온데 분개하며 향찰 연구로 방향을 튼 분이었다. '두 섬'의 일본식 발음이 '쓰시마' 양 교수는 “쓰시마의 뜻풀이는 복잡할 게 없다. 한국어의 ‘두 섬’을 일본식 발음으로 표현한 것뿐, 대마(對馬)라는 한자는 아무 뜻도 담기지 않은 단순한 차음”이라고 딱 부러지는 설명을 내놨다.
이 해석은 이승만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대마도는 上島及下島(상도와 하도)의 二島(두 섬)로 되어…” 라고 언급한 것과도 맥이 닿아 있다. 유서 깊은 일본 도시 ‘나라’와 마찬가지로 ‘쓰시마’도 한국어에서 유래됐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한국의 옛 조상들은 지명을 외형적 특성을 살려 지은 경우가 많았다. 부산 앞바다에 있는 일련의 섬들을 ‘어떤 때는 다섯개로, 때로는 여섯개로 보인다’고 해서 ‘오륙도’로 이름붙인 식이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섬을 같은 방식으로 ‘두 섬’으로 부른 게 ‘쓰시마’로 둔갑했다는 게 양 교수의 설명이다.
대마도가 왜 한국 땅인지를 이런 식으로 파고들면 끝이 없지만, 이쯤에서 그칠까 한다.
어쨌건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섬이기에 그렇다. 유사 이래 한국의 땅이었고, 지금도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일본이 더 이상 어깃장을 놓지 말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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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대마도가 우리 영토였음을 시사하는 사료가 발견됐다.
마산문화원(원장 임영주)은 19일 오후 3시 창원 3·15아트센터 국제회의장에서'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초청특강'을 열고 '대마도를 우리땅으로 표시한새로운 일본 고지도'를 발견한 내용을 발표했다.이번에 발견된 고지도는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시박물관에서 열린 특별기획전'일본 메이지유신의 인물과 풍경'전에 전시된 '일본 지도'. 이 지도는 영국 공사관으로 일본으로 파견돼 오랫동안 일본 막부에서 일한 오르코크가 1860년에 그렸다.이 지도가 주목받는 이유는1860년대 당시 대마도가 대한해협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
임영주 마산문화원장은 "실제 지도를 보면 대마도가 대한해협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대한해협이 현재 부산과 일본 규슈연안 사이의 바다를 말하는 것이다"며 "현재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대한해협은 대마도에서 우리나라 사이에 있어야 하고 대마도에서 일본 규슈연안은 쓰시마 해협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마도가 대한해협이라 표기된 우리나라 연안과 일본 규슈지역 사이에 있는 것은 이 곳이 명백한 우리 영토였음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임 원장은 또 "지도에는 대마도와 규슈연안을 동한국해(EAST COREA STRAIT)로 표기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현재 이 곳을 '현해탄(玄海灘)'으로 부르며 영자로 'KENKAINADA'로 표시하지만, 이 지도에는 그런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연안과 일본 규슈 연안을 대한해협으로 표시한 내용으로도 대마도는 우리 땅으로 볼 수 있는데, 대마도에서 규슈 연안을 현해탄이 아닌 동한국해(EAST COREA STRAIT)로 표기한 점 또한 대마도가 명백한 우리 영토임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날 초청강사로 온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역시 "이번에 보게 된 '일본지도'는 영국 등 서양에서도 대마도를 명백한 우리 영토로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한편, 마산문화원은 지난달 26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미노미공민관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이 지도는 마지막 날 일정으로 하기시 박물관에 가게 된 일행이 전시된 지도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이번에 알려지게 됐다
. 대마도는 한국땅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 위원회의 창조지역 사업으로 ‘고추먹고 맴맴’ 발상지 음성군이 선정된 동요 에듀케어 프로젝트사업 시행 일환으로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나라사랑 동요 발표회를 갖게 되었다. 일본이 우리 영토인 독도를 억지를 부려가며 자기네 땅이라고 허튼 소리를 하고 있는데 더더욱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역사가 있다.
그것이 바로 옛 선조들이 남겨주신 대마도가 우리나라 영토인 것이다. 대마도라는 섬은 신라의 별칭으로 경상도를 가리키는 말로 본시 계림에 속한 우리나라 땅으로 문서에도 기록된 명백한 사실이며 조선 세종실록에도 실려 있다. 또한 1860년대 삼국통람도설 (삼국 접양지도) 미.일 간의 오가사와라제도 영토 협상과 관련되어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설명한 미국과 일본의 기록이 추가로 있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12월31일 연말 기자 회견에서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본에게 대마도의 반환 요구를 하기도 하였다. 지난 달 11일에 육사 군사훈련처장인 김상훈 대령이 일본 정부가 스스로 인정하는 지도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렇듯 역사적 근거가 명백한 만큼 이 노래를 통해 온국민 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리고 요즘 초, 중, 고 학생들이 우리 좋은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지 않고 욕설과 나쁜 은어들을 사용하는 좋지 않은 습관들이 더 번지지 않게 올바른 언어 습관을 길들이기 위한 동요다.
행사명 : 나라 사랑 동요 발표회
일시 : 2011년 6. 17 (금) 13:00
장소 : 음성 대소 초등학교 대강당
주최 : 음성군. 음성동요 학교
발표내용 : 대마도는 한국땅 (유정작사/송결작곡/김민국과 맴맴 합창단)
고운말 쓰자 (유정작사/노영준작곡/맴맴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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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조선의 땅 입증 지도 발견♡
`대마도는 조선 땅`
울릉도와 독도는 물론이고 대마도가 조선 땅임을 일본 스스로 확인하는 일본지도가 독도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독도박물관 이승진 관장은 18일 "일본이 만든 조선국지리도 가운데 팔도총도는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그리고 대마도가 조선 땅임을 확인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 지도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만든 지도로,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시한 현존하는 최초의 지도이기도 하다. 고 이종학 초대박물관장이 기증한 이 지도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것을 이 관장이 몰래 촬영한 것이다.
조선의 섬과 팔도만 그린 이 지도는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충청도, 함경도, 전라도, 황해도, 평안도 등 조선 팔도와 함께, 섬으로는 동해에 우산도, 울릉도, 남해에는 대마도, 거제도, 제주도 그리고 서해에는 진도, 흑산도, 군사도, 강화도 등이 조선 땅으로 명시돼 있다.
"이 지도는 현재 발견된 일본 지도 중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시한 최초의 지도로 일본 스스로도 대마도·독도가 조선 땅임을 인정하는 중요한 사료"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 관청이 허가를 한 지도에 대마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명시한 일본 고지도가 발견됐다. 이교희씨(73·대구시 동구 효목동)는 19일 1874년 일본 관청의 허가를 받아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도 오기 조선국 세견 전도(八道 五畿 朝鮮國 細見 全圖)'를 영남일보에 공개했다.
이 지도는 조선 8도를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 등 8가지 색상으로 구분해 놓았으며 울릉도의 명칭은 지금과 동일한 울릉도로, 독도는 우산도로 표기하고 있다. 또 지도상 독도가 울릉도 서쪽에
표시돼 있으나 이는 착오인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는 일본의 관청이 허가했다는 뜻의 '관허 명치 7년 제1월'이라고 표기되어 1874년(명치 7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씨는 이 지도를 중학교 1학년 때인 1946년 대구시 중구의 한 고서점에서 구입했다며 "지금까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이 지도를 펼쳐보았는데 일본은 이미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인정해 놓고서도 지금와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마도는 조선땅' 1400년대 제작 중국 고지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8일과 1949년 1월 7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공식 요구한다. 이 대통령은 당시 우리 지식인 중 일제 식민지 역사교육을 거치지 않고 서양에서 서양역사를 통해, 구한말 우리 역사와 일본의 한국 영토침탈 과정을 공부한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었다.
이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며,“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래된 해상 경계가 있다” 고 한 발언 중‘오래된 해상경계“는 어디일까?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11일 열린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주최 제3회이승만 포럼에서 “이 오래된 해상경계는 대마도와 일본 본 섬 사이의 현해탄”이라고 밝혔다.
즉 대마도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주장이다. 일본인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93)는 1832년, 삼국접양지도를 만든다. 이 지도의 해설서가 삼국통람도설이다. 하야시 시헤이는 이 책에서 당시 일본과 그 주위 3국인 조선, 류쿠국(오끼나와), 하이국(북해도)과 무인도였던 오가사와라(小笠原, 일본 남부 태평양 1000km지점의 80여개 군도)제도에 대한 지도와 해설을 해놓았다.
사진의 지도는 독일인 클라프로토(Kl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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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반환하라” 이승만, 日에 수십차례 요구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3일 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을 열고
대일 관계에 관해 중대한 발언을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上島及下島(상도와 하도)의 二島(두 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삼백 오십년 전 일본이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대마도 한국 영유권' 발언에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반발하자
이 대통령은 9월 9일엔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 영유권을 확인했다고 뉴데일 리가 보도했다. 뉴데일리에 따르면 다음해인 1949년 1월 8일 연두 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대마도 반환문제를 강력히 제기한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대일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하여야 한다"며 "특히 대마도는 별개로 하여 취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마도가 우리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350년 전 일본인들이 그 섬에 침입하여 왔고 도민들을 민병을 일으켜 일본인과 싸웠다"며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일본인들이 뽑아다가 도쿄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 비석도 찾아올 생각이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1949년 12월 31일 대통령 연말기자회견에서 거듭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 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역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력히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 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는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와 함께 한일회담 협상과 맞물리면서 60여 차례나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보도된 국내외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의 대마도를 반환받는 것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함께 중국 여론도 이 같은 주장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이를 지원하는 대규모 시위를 했던 사실 역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대마도가 한국 땅이고 해방-건국과 함께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실지(失地)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2008년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 정책 연수를 위해 1년간 머물렀다. 조지 워싱턴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학부를 마친 곳. 건국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지 워싱턴대에서 1907년 청년 이승만의 흔적을 찾던 김 대령은 우연히 조지워싱턴대 도서관에서 이승만의 영문 저서 'Japan Inside Out'을 발견하고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책의 내용 중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오래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있다'라는 이 대통령의 언급을 발견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시절, 김 대령은 이 '한-일 간의 오래 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어디를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에 오른 뒤 기회만 주어지면 "대마도를 불법 점거한 일본은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수십 차례나 주장한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 년 간의 집요한 연구와 추적 끝에 김 대령은 이승만의 '대마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의 명백한 근거를 찾았다. 그리고 왜 일본이 틈만 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밝혀냈다. 김 대령은 11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의 제3회 '이승만 포럼'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그 명쾌한 근거를 제시한다.
동아닷컴 디지털뉴스팀 《SUNG RYE》 옮김
빼앗아 간도 대마도를 찾아 와야 합니다.
(조선일보) 2005/4/18
`대마도는 조선 땅`
이응백/서울대 명예교수
어원적 고찰부터
[독자 편지] 독도 어원적 고찰
지명 작성 원리로 볼 때 다케시마는 독도와 무관
입력 : 2005.04.18 18:03 / 수정 : 2005.04.18 18:52
우리가 ‘두 섬’이라 한 데 대한 일본식 음사(音寫)라 하겠다. ‘두’의 일본음은 ‘츠’가 된다. 가나의 ‘다디두데도’를 ‘다지츠데도’로 한 것과 같이 ‘두’를 ‘츠’라고 한 것이다. ‘섬’의 음사는 두 음절로 바꾸어 ‘시마’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츠시마’는 곧 우리 말의 ‘두 섬’에 일본식 음사일 뿐이다.
서울에 ‘뚝섬’을 독도(纛島)라고 표기한 것은 한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뚝’을 쌓아 그 지역이 ‘섬’과 같이 되었다는 유래를 나타낸 말이다. 독도는 한자로 獨島라고 표기하지만, 작고 큰 섬으로 된 독도가 홀로 선 섬이 아니므로, 그것은 ‘돌섬’이란 뜻인데, ‘돌’의 경상도 방언이 ‘독’이므로 한자음을 취해 獨島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소재에 입각한 이름이다. 죽도(竹島)라고 하면 대와 관련이 있어야 할 텐데, 독도에서 대를 어찌 했다든지, 바위섬에 대가 살 수 없어 지금도 대를 볼 수 없으니, 竹島라는 명칭은 가당치도 않다. 따라서 ‘다케시마(대섬)’는 독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지명이므로, 어원적으로 볼 때 이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된다. ‘다케시마’는 ‘독도’가 아니므로 딴다리를 긁는 셈이다. (이응백·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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