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冠岳山 . 연주암戀主庵

2024. 10. 16. 05:19Wonderful World

 

 

 

 

관악산 연주암

연주암戀主庵 연주대, 관악사(冠岳寺)

 

 

관악산冠岳 . 연주암戀主庵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冠岳山) 연주봉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암자.

 

 

관악산 연주대 연주암 지도바위

 

 관악산 연주암과 왕관바위

연주대에서 바라본 한강과 강남일대

관악산 파노라마~~~

 

관악산 정상의 풍경~

 

관악기상청과 말바위

 

관악정상에서 본 서울 정경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관악사(冠岳寺)라 하였다.

 

1392년(태조 1)에는 이성계(李成桂)가 의상대를 중건하고 그의 처남인 강득룡(康得龍)이 연주대라고 불렀다. 강득룡 · 서견(徐甄) · 남을진(南乙珍) 등이 이곳에서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기 때문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주대는 1973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관악산 연주대(冠岳山 戀主臺)

 

1396년에는 연주암을 신축하였고, 1411년(태종 11)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건하여 중건하였다. 충녕대군(忠寧大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뜻을 안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효령대군은 유랑 길에 올랐다가 이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원래의 암자에서는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여 추억과 동경의 정을 끊을 수 없었으므로 현 위치로 절을 옮겼다고 한다.

 

그 뒤 두 왕자의 심경을 기리면서 세인들이 이곳을 연주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대웅전 앞에는 높이 3.2m의 고려시대 양식을 한 삼층석탑이 있는데, 효령대군이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절은 그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868년(고종 5)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하사금으로 극락전과 용화전(龍華殿)을 중수하였고, 1883년에 대방을 중수하고 기와불사를 하였다. 1886년에는 행문(幸文)이 법당과 나한전을 중수하였고, 1886년에는 역시 명성황후의 하사금으로 전각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1918년에는 경산(慶山)이, 1929년에는 재운(在芸)이, 1936년에는 교훈(敎訓)이 중수하였다. 1975년 송원(松園)이 대웅전을 신축하였고, 1979년에 연주대와 삼성각을 중수하였으며, 1981년 요사 개축, 1996년 관음전 개축, 2003년 영산전 중수, 2005년 연주대를 대수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영산전, 연주대(응진전), 삼성각 등을 비롯하여 효령대군의 진영을 봉안한 효령각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 후기의 우수한 작품으로, 1980년 시도유형문화재(현, 시도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관악산 연주암은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정상(해발 629m)의 8-9부 능선에 높게 자리잡은 신라 시대 창건 고찰이다.

연주대 암자는 정상부에 천길 낭떠러지 위에 위태롭게 자리한 매우 작은 암자로 항상 빼어난 풍경을 선사해주고 있다.

 

서울 근교 산 가운데 서울시내 전체 조망(멀리 과천, 안양 포함, 인천 바다까지)이 가장 좋은 산이 관악산으로 판단된다.

북한산, 도봉산, 청계산을 올라도 서울시의 일부 지역만을 조망할 수 있을 뿐이다. 
 
전형적인 바위산(골산)으로 기가 충만하여 강강찬 장군 같은 출중한 인물을 배출한 명산(서울대 후문 방향 낙성대 공원과 강감찬 장군 생가 터)으로 판단된다. 신기하게도 강감찬 장군 생가터에서 보면 관악산 정상이 바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