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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준공된 안변 설봉산 석왕사(雪峯山釋王寺)
김명국 2019. 12. 13. 13:21
[서울신문]북한은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에 있는 사찰 석왕사 복원 작업을 마무리하고 12일 준공식을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석왕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꿈을 해몽해준데 대한 보답으로 창건한 사찰로, 조선왕조의 보호를 받았다.통신은 석왕사의 대웅전,심검당,응진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원상대로 복구되고 10여점의 불상과 수백점의 불구 등이 갖추어지게 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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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복원된 석왕사 준공
북한,복원된 석왕사 준공
북한,복원된 석왕사 준공
북한,복원된 석왕사 준공
북한,복원된 석왕사 준공
북한,복원된 석왕사 준공
북한,복원된 석왕사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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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사 -
18세기 안변 석왕사 모습
<관북십승도> 중 ‘석왕사안변’ 부문. ⓒ 국립중앙박물관.
안변 석왕사 산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pan008246).
석왕사 설성동루. 자료 사진 © 이형주 기자
석왕사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을 기도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왕이 될 꿈을 해석하다 - 석왕사
- 사찰 이야기를 담다
- 입력 2024.02.22 18:32
이대형 동국대 불교학술원 부교수
“굽이도는 돌길은 구름 속으로 비껴 드네”
이성계의 조선 개국과 인연이 있는 안변 설봉산 석왕사. 출처=조선고적도보
‘동방 최상의 원당’ 창건 인연
이성계의 꿈과 무학대사 ‘해몽’
정조 등 조선 임금 친필 다수
함경도 안변 설봉산에 있는 석왕사. 지금은 가 볼 수 없으나 ‘동방 최상의 원당’이라 일컬어졌던 사찰.
원당(願堂)이란 시주자의 소원을 빌거나 죽은 사람의 화상(畵像)이나 위패를 모셔 놓고 명복을 비는 법당을 말한다. ‘동방 최상의 원당’이란, 만년에 오랫동안 석왕사에 주석하였던 역산선영(山善影, 1792~1880)스님의 문집 <역산집>에 수록된 ‘석왕사 수군당(壽君堂) 중건 상량문’에 나오는 표현이다.
석왕사가 ‘동방 최상의 원당’이 된 것은, 석왕사의 창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 1384년(홍무 17)에 전라도 익산에서 함경도 안변으로 옮겨와 머물던 이성계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1만 집의 닭이 일시에 울고, 1천 집에서 다듬이 소리가 일제히 울리는 가운데 허름한 집에 들어가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으며,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땅에 떨어져 깨어지는 꿈이었다. 꿈이 이상해서 이웃 노파에게 물으니, 노파는 설봉산 토굴에서 9년째 솔잎을 먹으며 좌선하고 있는 무학대사에게 가 보라고 했다.
무학대사는 그것이 국왕이 될 꿈이라고 했다. 1만 집의 닭이 일시에 울었으니, 닭 울음소리 ‘고귀위(高貴位)’는 ‘높고 귀한 자리’에 오름을 뜻한다. 1천 집에서 다듬이 소리가 일제히 울렸으니, 다듬이 소리 ‘어근당(御近當)’은 ‘임금 자리에 가까이 감’을 말한다. 꽃이 지면 열매를 맺고 거울이 떨어지면 소리가 나는 법이며, 서까래 세 개를 사람이 짊어지면 ‘왕(王)자’가 된다고 해석하고는 해몽이 맞으면 이곳에 절을 세우고 원당으로 삼아달라고 하였다.
해몽한 대로 왕위에 오른 태조는 1410년에 편액을 내려 ‘석왕사(釋王祠)’라 했다.
이후 선조는 1576년에 의창군 광(珖)에게 ‘설봉산 석왕사’라는 편액을 쓰게 하여 걸도록 했다. 1708년에는 석왕사의 승려 행정(行淨)이 태조의 친필이라고 전하는 판(板)을 들고 와서 비석에 새기길 청하니, 숙종은 석왕사가 일반 사찰에 비할 바 아니라는 기록을 석왕사에 남겼다. 영조는 1758년에 태조의 필적에 감탄하는 글을 남겼다. 정조는 1790년에 “부처님께서 삼교(유불선) 가운데 최후에 나오셨으나 그 영험함은 가장 드러났다. 유자(儒者)들이 믿지 않으나 또한 왕왕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불교 친화적인 글 ‘안변 설봉산 석왕사비’를 남겼다. 이렇듯 조선의 역대 임금들의 친필이 사찰에 있었으니 다른 사찰에 비할 바 아니다.
1671년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사찰을 탐방한 남구만(南九萬)이 묘사한 석왕사는 다음과 같다.
“남산역(南山驛)에서 절을 찾아가 계곡 어귀에서 홍살문으로 들어가니, 첫 번째 건너는 수각(水閣)을 단속문(斷俗門)이라 하고, 두 번째 건너는 수각을 등안각(登岸閣)이라 하고, 세 번째 건너는 수각을 불이문이라 하는데, 세 누각의 거리가 거의 10리이다. 양쪽 벼랑은 모두 기이한 바위와 가파른 절벽이며, 단풍나무와 소나무 숲이 펼쳐졌다.
절에 도착하니, 불전이 크고 화려하며 요사채가 꽤 많아서, 함경도에서 으뜸이었다. 깊숙한 건물과 회랑이 아득하여 갈 곳을 모를 지경이다. 절의 서쪽에 있는 전각에 나무로 만든 8백 나한상을 안치하였는데, 태조가 즉위 전에 원수로서 북쪽을 정벌할 적에 낭장(郞將) 김남련(金南連)에게 길주 광적사에 가서 배로 나한상을 실어 오게 하고, 판각하여 이 일을 기록하였다.” ‘북관십경도기(北關十景圖記)’(<약천집> 28)
석왕사 대웅전. 출처=조선고적도보
박세당, 사찰 풍경 서술 작품
근심과 기쁨 대비 ‘흥취’ 전달
“유자들은 해를 알지 못하네”
위 글에서 나한상을 실어 온 일을 판각한 것이 태조의 친필이라고 전하는데, 동북면도원수 신분이던 1377년(홍무 10)의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앞서 소개한 꿈풀이의 시기 1384년(홍무 17)과 모순된다. 꿈풀이의 시기는 청허휴정 스님의 ‘설봉산 석왕사기(雪峯山釋王寺記)’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후에 ‘홍무(洪武) 7년’(1374)을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설봉산 석왕사기(雪峯山釋王寺記)’를 목판으로 출판할 때 편집자가 협주에서 밝혔다. 남구만의 아들 남학명(南鶴鳴)이 1709년에 석왕사 행정(行淨) 승려의 부탁을 받고 ‘석왕사비’를 썼는데, 여기서 청허대사의 글을 황당하다고 비판한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했다.
석왕사의 요사채 규모에 대해 홍경모(洪敬謨, 1774∼1851)는 ‘학성지(鶴城志)’(<관암전서(冠巖全書)> 24)에서는 16채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인지료(仁智寮)와 용비루(龍飛樓)는 조선 태조가 머물렀던 곳이다. 석왕사 주변에는 12곳의 부속 암자들이 보필하듯 연이어져 있었다.
18세기 지리지 <여지도서>에는 석왕사 건축의 순서가 명시되어 있다. 무학대사가 해몽하면서 오백성재(五百聖齋)를 베풀면 신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권유하자, 태조는 먼저 응진전을 짓고 재를 올렸다. 이후 봉리군(奉利君) 신조(神照) 대사가 왕명에 따라 보성전(普光殿)을 세우고, 승통(僧統) 설오(雪悟)스님이 심검당(尋堂)을 세우고, 개국법주(開國法主) 계근(戒根)이 민적당(泯迹堂)을 세우고, 달공(達空) 화상이 범종루(泛鍾樓)를 세우고, 주지 성호(性浩)스님이 대장전(大藏殿)을 세웠다. 그리고 조정에서 논밭 2백 결(結)과 노비 22명을 주었고, 승려는 80명이라고 적시하여 그 성대함을 기록하였다.
1688년 서계 박세당은 아래와 같이 석왕사의 풍경을 노래하기도 했다.
단속교두류수청(斷俗橋頭流水淸)
회회석경입운횡(回回石徑入雲橫)
지수사피층봉격(只愁寺被層峯隔)
도희문개형야평(倒喜門開野平)
단속교 언저리에 흐르는 물이 맑고
굽이도는 돌길은 구름 속으로 비껴 드네
층층 봉우리 저편에 있는 사찰만이 근심이더니
문을 여니 멀리 평야 있어 기쁘기만 하네 ‘석왕사(釋王寺)’, <서계집> 3
석왕사로 가는 길과 주변 경치를 절구 속에 그림 그리듯 표현했다. 단속교를 지나 돌길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데 아직도 사찰이 저 멀리 층층 봉우리 속에 있다고 하여 높은 산 깊숙이 자리잡은 위치를 표현했다. 그런데 도착해서 잠시 쉬고 문을 열고 보니 저 멀리 평야가 보이는 게 아닌가. 깊은 산에 있으면서 한쪽으로는 탁 트여 멀리 평야가 보이니, 막히고 트인 경관이 근심과 기쁨으로 대비가 되어 시의 흥취를 더한다.
18세기 호남에서 주로 활동하였고 해남 대흥사 13대종사의 일원으로 일컬어지는 연담유일(蓮潭有一) 스님은 ‘어제 석왕사 비문 뒤에 삼가 쓰다 (謹題御製釋王寺碑文後)’에서 역대 제왕들과는 달리 불교를 배척한 당대 유자(儒者)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무릇 도(道)를 비유하자면 해와 같다. 훌륭하신 선왕과 후손들께서는 시대가 달라도 서로 감응하여 하늘의 해가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아셨는데, 저 유자들은 해를 보고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구나.”
이대형 동국대 불교학술원 부교수
[불교신문 3809호/2024년2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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