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선 판사... "尹영장에 자의적으로 형소법 적용 배제"

2025. 1. 30. 05:09History & Human Geography

법 위에 선 판사... "尹영장에 자의적으로 형소법 적용 배제"

 

'비밀 장소는 책임자 허락 필요'
수색 영장서 법 조항 예외 논란
법조계 "전형적인 사법 과잉"

유희곤 기자

이민준 기자

입력 2025.01.02. 00:55업데이트 2025.01.02. 08:28

 

 

법원이 지난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영장과 함께 발부한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에 ‘군사상‧공무상 비밀 장소는 책임자 또는 기관 승낙 없이는 수색하지 못한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1일 전해졌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수색 대상과 방식이 아닌 법률을 배제하라는 것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영장”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법조인은 “법 테두리 안에서 판단해야 할 법관이 특정 법의 적용을 제한한 것은 ‘입법’의 영역으로, 삼권분립 원칙과 법률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3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을 발부하며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했다고 한다. 이 조항들은 군사상 비밀이나 공무원 직무상 비밀에 관한 곳은 책임자 등이 허락해야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다만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승낙하도록 돼 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이날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경호처가 관저 문을 열지 않을 경우 이 행위가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경고했다. /뉴스1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판사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사법 신뢰를 침해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냈다. 또 대법원에 진상 조사와 이 부장판사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영장과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군사상 비밀이나 공무원 직무상 비밀에 관한 곳은 책임자 등이 허락해야 압수와 수색이 가능하다’는 형사소송법 110·111조의 적용을 배제한 것은 대통령경호처가 영장 집행을 거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30일 세 차례 소환 통보에 불응한 윤 대통령의 체포 영장을 청구하며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을 찾기 위해 수색영장도 함께 청구했다.

 

그런데 대통령경호처는 앞서 형사소송법 110·111조를 들어 경찰의 대통령 관저 등에 대한 압수 수색을 승인하지 않았다. 과거 청와대도 검찰 등이 압수 수색을 시도할 때마다 같은 이유로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영장에 적힌 압수물 일부를 임의 제출했다. 이 부장판사가 이번 수색영장에 형사소송법 110·111조 적용을 배제하겠다고 한 것은 결국 경호처가 윤 대통령 체포를 막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형사소송법 110‧111조 배제 논란

법조계에선 형소법에 근거해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가 같은 법률의 특정 조항을 배제하겠다고 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례라는 비판이 나온다.

 

보통 법원은 검찰이나 공수처 검사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할 때 유효기간을 적고, 장소‧신체‧물건‧압수 대상 및 방법 등을 제한해 그중 일부를 기각하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요청한 대상의 일부만 허용하는 경우는 많지만, 법률 적용을 제한해 영장을 발부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법조계 다수의 의견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 제도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인정되는데, 판사가 자기 판단으로 법률을 배제한다는 것은 사법부의 역할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영장전담 판사의 ‘삼권분립 위배’”라고 했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이런 영장은 처음 본다”면서 “법률 적용을 제한하는 것을 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는 입법의 영역”이라고 했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도 “이 영장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더라도’ 공수처가 대통령 관저를 수색할 수 있다고 한 것인데,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형사소송법 110‧111조를 예외로 할 근거가 없어 법 위반 소지가 크다”며 “전형적인 사법 과잉”이라고 했다.

 

한편, 일단 영장이 발부된 만큼 윤 대통령 측이 집행을 막아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판사가 형사소송법 110‧111조를 예외로 하지 않으면 영장 집행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했을 것”이라며 “향후 재판에서 위법한 영장 집행이라고 다툴 수는 있겠지만, 일단은 발부된 영장은 받아들이는 게 국민의 의무”라고 했다.

 

◇“공수처, ‘판사 쇼핑’ 성공했네”

이 부장판사의 수색영장 논란이 불거지자,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결국 영장 발부에 유리한 법관을 찾는 ‘판사 쇼핑’에 성공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공수처는 법률상 재판 관할 법원이 서울중앙지법인데, 이번엔 윤 대통령 관저 주소지 등을 고려해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했다. 공수처법에 ‘범죄지, 증거의 소재지, 피고인의 특별한 사정 등을 고려해 다른 법원에 기소할 수 있다’고 돼 있는 예외 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가 예외 조항을 적용하려면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서울중앙지법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까운 서울 내에 있는 서울서부지법을 선택한 것은 영장 발부를 받기 위한 ‘노림수’였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검찰의 내란죄 수사권을 인정했는데, 이 기준대로면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희곤 기자  

사회부 법조팀

 

이민준 기자  

법조팀

 

현직 판사, '형소법 적용 배제' 尹영장에 "판사가 입법하면 안 돼"

成 부장판사, 법원 게시판에 공개 글 올려
"재판 독립 침해" 반박 글도

방극렬 기자

박강현 기자

입력 2025.01.02. 20:08업데이트 2025.01.02. 20:28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모습. /연합뉴스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영장과 함께 발부한 수색영장에 형사소송법 적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알려지자, 현직 부장판사가 “판사가 입법을 하면 안 된다”며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앞서 법조계에서 “수색 대상과 방식이 아닌 특정 법률을 배제하라는 수색영장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데 이어 법원 내부에서도 같은 비판이 나온 것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성금석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형사소송법 제110조·111조의 적용 예외를 명기한 체포(수색) 영장이 발부된 것이 사실인지, 확인 및 진상 규명과 적법한 조치를 희망한다”는 글을 썼다.

 

성 부장판사는 “판사는 법을 지켜야 하는 공직자일 뿐 재판을 하면서 법 위에 서거나 법률 위에 군림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며 “판사와 법원은 입법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은 피의자, 피고인이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부인,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앞서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청구한 대통령 관저 수색영장을 발부하며 ‘형사소송법 110조와 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했다. 군사상·공무상 비밀에 관한 곳은 책임자 등이 허락해야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규정하는 조항들이다. 대통령경호처가 해당 조항을 근거로 공수처의 체포를 거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법에 근거해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가 특정 법 조항을 배제하겠다고 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사법부의 역할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판사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며 대법원에 진상 조사와 이 부장판사의 징계를 요구했다. 또 “법률적 근거가 없는 영장 청구와 발부로 대통령의 권한이 침해됐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 쟁의 심판도 냈다.

 

다만 이 같은 지적이 법원의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는 코트넷의 성 부장판사 글에 답글을 달고 “판사의 재판 당부에 대해 사법부가 별도의 방식으로 확인, 진상규명, 조치 등을 취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재판의 독립에 대한 침해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체포 영장에 대한 윤 대통령과 대통령경호처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집행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법원이 이례적인 내용의 영장을 발부할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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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극렬 기자  

편집국 사회부 법조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박강현 기자  

사회부 법조팀에서 법원을 출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