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7. 18:53ㆍKorean Arts
마포종점[麻浦終點] - 은방울자매
1968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swgiGwCVFSQ
쌍고동 우는 항구 1965 은방울 자매,
김영일 작사, 송운선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h4RN4JYv4N8
무정한 그 사람 - 은방울 자매
1964
반야월 작사, 송운선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Xf0o3367dFs
3·1독립운동기념터;마포전차종점
위치 :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20(마포동 140)
다보빌딩 불교방송 입구 오른쪽 보도
마포종점의 위치는 현재의 지하철 5호선 마포역 근처 현 불교방송 본사 사옥터다
1960대 마포종점
마포종점은 현재의 마포대교 북단으로서 당시로서는 인구도 적고 조명도 많지 않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밤에는 여의도와 그 넘어 영등포, 서쪽으로는 당인리 화력발전소(현 서울화력발전소)까지 훤히 보였다.
1960년대의 당인리발전소
전차를 거둬낸 뒤의 마포종점(1970년) - 강 건너 여의도가 보인다
1955년 여의도비행장
마포종점 [麻浦終點] 노래비
마포전차 종점은 지금의 '마포 어린이 공원'이 있는 자리이다 .
'마포종점' 노래는 마포구 도화동에 살았던 작사가 정두수선생이 발착을 알리는 구슬픈 종소리와 함께 서민의 애환과 정취를 실어 나르던 전차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에 전차와 더불어 어느 두여인의 슬픈 사랑이야기에 얽힌 아련한 옛기억을 회상하면서 만든 노랫말에 작곡가 박춘석선생이 곡을 붙혀 1967년 봄, 가수 은방울자매(박애경1937년생, 김향미1938년생)가 노래를 불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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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정두수 선생 말을 빌리면 1960년대 초 당시 서울 마포 풍경은 강가에 갈대숲이 우거져있고 여의도 쪽으로 가려면 나룻배를 이용해야 했다... 마포에는 전차의 종점이 있었고, 당시 정두수 선생은 마포종점 부근에 살았다. 작곡가 박춘석 선생과 곡을 만들기 위해서 거의 매일 밤을 세웠고, 그러다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면 동네 설렁탕집에서 배를 채웠우곤 했다.
바로 그 집에서 듣게 된 젊은 남녀의 이야기가 이 노래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유학 간 남편이 과로로 쓰러져 그만 숨을 거두고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여인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해서 거의 실성한 상태로 매일 마포종점에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기다렸다고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인마저 마포종점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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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래는 마포종점을 바라본 한강을 낀 마포의 야경이 잘 나타나 있어 마포주변의 옛모습을 회상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마포가 여러사람에게 사랑받는 계기가 되었다.
서민의 발이요, 애환을 실어나르던 전차는 '마포종점'의 노래가 발표되던 이듬해인 1968년 세월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 마포종점, 밤전차 : 1968년 11월 30일 운행이 전면 중단된 전차는 그 당시로는 가장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남대문을 기점으로 마포, 원효로, 영등포, 왕십리, 청량리, 돈암동, 혜화동에 전차 종점이 있었다.
- 영등포 불빛 : 현재는 서울의 도심이 여러곳으로 분산되어 있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명동이 핵심 상권이었고 그밖에 동대문, 마포, 청량리도 중요한 상권에 속했다.영등포는 당시 각종 공장들이 밀집한 공업단지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곳이었던데 따라서 영등포는 이농후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구직자들이 몰려들던 인구밀집 지역이기도했다. 특히 마포는 이농한 빈곤층들이 모여사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대표적인 달동네였으나 인적,물적 자원이 풍요로웠던 영등포에 수많은 유흥업소가 생기고, 급작스럽게 팽창한 신시가지답게 범죄 발생 빈도도 당시에는 으뜸이었다고...
- 당인리 발전소 (唐人里火力發電所) : 홍익대와 인접한 마포구 당인동의 서울발전소는 예전에 당인리 발전소라고 불렸다. 일제 치하인 1930년에 서울 외곽이었던 당인리에서 화력발전으로 전기 생산을 시작하며 서울특별시 발전의 동력 역할을 톡톡히 하였지만 이후 시설 확충을 계속하며 성장하여 왔으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게됨으로써 공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지상의 서울화력발전소 는 2018년 지하화 과정을 추진하여 지상에 공원을 새롭게 조성, 지금은 '마포새빛문화숲'으로 되었다.
** 2021년 11월 23일: 서울복합발전소 준공식
- 여의도 비행장 :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지만 여의도는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비행장으로 1958년 김포로 이전하기 까지 국제공항으로 사용되었다. 마포종점 노래가 발표될 당시(1968년)에도 미공군 기지로 사용되며 군용기들의 이착륙이 활발하였다. 그러므로 비내리는 밤, 마포에서 건너다 보이는 여의도의 비행장 불빛이 쓸쓸하다고 표현했을것이다.
마포새빛문화숲
서울시 미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은방울 자매 '마포종점' 기념비
[은방울 자매 - 마포종점]
은방울 자매
1954년 박애경, 김향미 두사람으로 결성된 '은방울 자매'는 1950 ~ 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요계의 대표적인 원조 여성그룹으로 '삼천포 아가씨', '무정한 그사람', '쌍고동 우는 항구', '마포종점'등의 히트곡들을 발표하여 오랫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초창기의 멤버는 박애경, 김향미였으나, 1981년에 김향미가 미국으로 이민한 후 1989년 새로운 멤버로 오숙남이 영입되었다.
박애경(본명 박세말) 이 2005년 위암으로 타계한 후, 오숙남은 3년간 애도의 뜻으로 활동을 접었다가 마포종점가요제 및 삼천포가요제가 생기면서 출연요청이 들어오자 가수협회 사무총장에게 추천받은 정향숙을 새로운 멤버로 영입했다.
'은방울 자매' 언니 故박세말씨 빈소 찾은 작은 은방울의 눈물
2005. 11. 6. 09:54
【서울=뉴시스】
2005년 11월 4일 오후 11경 '은방울 자매'의 언니 故 박애경(본명 박세말)씨가 향년 68세의 나이로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타계했다.
고인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은방울 자매'의 동생 오숙남(59)씨는 "24년을 붙어살다 시피 했는데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떠나버리시니 그 슬픔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1960년대의 당인리발전소.
200만평의 모래톱으로 이루어진 여의도는 현재의 샛강은 건천이었는데,
일제가 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영등포쪽으로 하천 길을 내어 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1968년 서울시는 여의도에 방죽을 쌓은 후 그곳에 윤중제 (輪中堤) 란 이름을 붙였는데,
강섬의 둘레를 둘러쳐서 쌓은 제방인 ‘방죽’ '섬둑'이다.
윤중제는 강섬을 둘러 쌓은 제방, 즉 일본어 ‘와주테이(わじゅうてい)’의 한자 ‘輪中堤(윤중제)’이다.
윤중제(輪中堤) 완공(1968년)이전의 여의도의 옛 모습 .
여의도 비행장 활주로, 여의도로 건너는 샛강에 놓인 다리가 보인다.
멀리 관악산 모습.. 강 좌측이 상류고 우측이 바다로 향하는 하류이다.
개발 이전의 여의도는 모래톱으로 이뤄진 200만평의 땅이었다.
1968년 3월 공사중인 윤중제.
1916년 3월 : 일제가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여율리(현 여의도)에 비행장 건립 시작.
1916년 9월 : 활주로. 격납고 완공, 1916년 10월 : 개장.
((여율리는 여의도와 밤섬(율도)에서 한 글자씩 딴 것으로, 문자 그대로 한강의 하중도 두 곳을 관장하는 행정구역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밤섬은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였기 때문이다))
여의도공항 또는 여의도비행장(K-16)은 1916년부터 1958년까지 서울 여의도에 있었던 국내 최초의 공항으로.
이후에도 공군기지로 쓰이다가 1971년에 폐쇄되었다.
1945년의 여의도비행장과 영등포 일대를 촬영한 미군 항공사진
8.15 광복 이후 공군이 창설된 곳도 바로 이 곳이였다. 1949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 234호에 따라 공군이 창군되었을 때,[6] 1천여 명의 장병과 20여 기의 경항공기로 구성된 공군 최초의 비행단이 존재했다.
1953년에는 국제공항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 시기의 여의도 공항은 현재의 여의도 부지를 거의 모두 사용하는 공항이었다.
하지만 잦은 한강의 범람으로 공항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결국 1958년 1월 30일: 민간공항 기능을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으로 이전하고 공군기지로만 사용하게 되었으며, 1971년 2월에 공군기지 기능을 성남에 있는 현재의 서울공항 (현 서울공항,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이관하면서 폐쇄되었다.
뛰어난 접근성 덕에 20년 넘게 공군의 최전방 기지로 운용되었다. 2009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의도공원에 공군 창설 60주년 기념탑이 건립되기도 했다.
공군 창군 60주년 기념탑
대한민국 공군은 1949년 10월 1일 조국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경항공기 20여 대와 1,600여 명의 병력으로 창군되었으며, 이곳 여의도는 당시에 창설된 대한민국 공군 최초의 비행단 기지로, 1971년 성남비행장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공군의 최전방기지로 운영된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창군 6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탑을 건립(2009.9.22)하였다.
공군창설 60주년 기념탑 여의도서 제막
2009-09-21 10:28
여의도, 공군 첫 비행기지..T-50 8대 축하비행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공군창설 60주년 기념탑 제막식이 22일 오후 3시30분
서울 여의도 공원내 문화의 마당에서 개최된다고 공군이 21일 밝혔다.
1949년 10월 1일 창설된 공군은 서울 여의도에 첫 비행기지를 뒀으며 옛 여의도 기지가 있던 자리는 1971년 경기도 성남으로 기지가 이전할 때까지 공군의 태동기지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기념탑은 공군의 공모에 의해 이상호 디자인기업협회 부회장의 작품으로 선정됐으며
중간부 타원과 4개 상징탑, 중앙탑으로 이뤄져 있다.
중간부 타원은 공군의 단합과 우주로 넘어가는 대기권을, 4개 상징탑은 공군의 비상과 4대 핵심가치(도전, 헌신, 전문성, 팀워크)를 각각 표현했다. 높이 13.5m의 중앙탑은 항공우주군을 향한 공군의 끝없는 상승과 도전을 상징한다.
여의도기지 연혁
1949.11.2 미군으로부터 여의도기지 인수
1950.5.14 건국기(T-6) 명명식 거행
1950 6. 25 6.25 전쟁 발발시 공군 작전지휘소
1954.11.20 공군본부 서을분실 설치
1966 J0.17 은마부대(월남전 파병부대) 창설
1971. 1.14 여의도기지 폐쇄(성남 공군기지로 이전)
은방울자매 대표곡모음 LP판
https://www.youtube.com/watch?v=K_9ik-TeD6Q
Sunhee Kwon
@sunheekwon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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