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황태자’에서 ‘강성 보수의 리더’로…김문수는 누구인가

2025. 2. 11. 05:25Beautiful People

‘운동권 황태자’에서 ‘강성 보수의 리더’로…김문수는 누구인가

강윤서 기자2025. 1. 23. 09:00

 

反유신으로 서울대 두 번 제적…‘전태일 분신’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
보수로 변신 뒤 ‘의원 3선’ ‘도지사 2선’ 경력…‘극우·막말 이미지’는 부담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반전이 반전을 거듭하면 '대세론'이 되고, 대세적 흐름이 지속되면 '추세'가 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떠오른 '반전의 인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주목해 봐야 할 이유다. 그는 이번 계엄·탄핵 국면에서 슬금슬금 여권 차기 대선주자 1위에 올라탔다. 

 

대선후보 반열 밖에 있던 인물의 등장으로 여야 안팎 '물음표'가 쏟아지는 반면, 보수 지지층에선 '느낌표'가 늘어나고 있다. 초유의 대통령 구속으로 갈 곳 잃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현 정부를 꿋꿋하게 엄호하고 있는 김 장관 앞으로 모여들었다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보수층이 몰고 온 '김문수 신드롬'이 과연 금세 사라질 신기루일지, 본인 등판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시사저널 박은숙

 

12·3 비상계엄 뒤 보수층 사로잡은 김문수의 결정적 장면 셋

 

왜 지금 보수는 김문수 장관을 끌어올렸을까. 다양한 해석이 있다. 우선 보수층에는 '이재명의 민주당'의 대척점에 설 수 있을 만한 '확신'의 인물이 필요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김 장관은 현재 '보수의 적자'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계엄·탄핵 국면에서 보여준 그의 태도로 인해 강경 보수층 사이에서 윤 대통령을 엄호하는 동시에 보수를 지킬 사람으로 영웅화됐다는 시각도 있다.

 

김 장관의 결정적 장면은 크게 3가지가 꼽힌다.

①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기립 사과' 요청에 불응한 모습(야당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

②'헌법재판관 2명' 임명을 결정한 최상목 권한대행에 대한 강한 반발(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반감 표출)

③장관으로서 정치적 단타성 발언을 삼가는 태도(홍준표·오세훈 시장 등에 지지율이 앞선 이유) 등이 보수가 지금 '김문수 카드'를 꺼내든 이유로 꼽힌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계엄 사태에 사과하지 않는 김 장관의 태도는 강경 보수층에 확신을 안겼다. 김 장관은 지난해 12월11일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국회의 긴급 현안질의 현장에서 "계엄을 막지 못한 것을 반성하라, 국민 앞에 사과하라"며 기립 사과를 요구한 서영교 의원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사과했지만, 김 장관은 "일어나세요!"라는 야권 의원들의 질타에도 꿋꿋이 앉아있었다. 김 장관은 '윤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도 "국민 김문수로서도 탄핵에 대한 (찬반 여부에) 답변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두 번째 결정적 장면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한 '일침'이었다. 김 장관은 지난해 12월31일 최 대행이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진행할 헌법재판관 2명을 국무위원과의 협의 과정 없이 임명한 데 대해 "이런 중차대한 일을 여야와 사전에 협의했느냐"고 강하게 쏘아붙였다. 김 장관의 이러한 반발은 앞서 현안질의에서 감췄던 윤 대통령의 탄핵 관련 입장을 일부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된다.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 뒤를 지키는 과묵함이다. 대선 국면이 다가오면서 행보·발언 빈도가 높아지는 다른 보수 주자들과 달리 김 장관은 특별한 입장 표명도 없이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1위까지 올라섰다. 오히려 윤 대통령을 향한 법적 공세에 안타까움을 표출하면서 '확실한 보수 주자'로 강성 지지층의 관심을 자극한 것이다. 김 장관은 1월6일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시도와 관련해 "너무 가혹하고 심하다. 민심이 뒤집어지고 있다"며 "현직 대통령이니만큼 기본적인 예우는 갖춰야 하는데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고 한 것이 현재까지 그가 공개적으로 전한 메시지다.

 

이런 결정적 장면들은 서로 상승효과를 내며 '김문수 재평가'로 묶였다. 그 촉매제는 유튜브였다. 영향력 있는 보수 유튜버들은 '이재명은 절대 안 된다'는 논리와 함께 김 장관을 '보수 적자' 리더로 치켜세우면서 강경 지지자들을 더 결집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게 김 장관은 스스로 대세론을 만들어냈다. 실제 시사저널이 여론조사업체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1월18~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김 장관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대선 가상대결' 조사를 실시한 결과, 김 장관은 46.4%를 얻어 41.8%에 그친 이 대표에게 오차범위 내 우세를 보였다. 계엄 사태 이후 보수진영 인물의 지지율이 부동의 '야권 1위' 이 대표를 뛰어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역시 다양한 관측이 있다. 우선 '일시적 거품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 구속 규탄' '이재명 집권 반대' 등의 분노를 동력으로 결집한 강경 보수층이 해당 조사를 포함해 최근 다수의 여론조사에 진보층보다 더 필사적으로 응답해 보수 과표집이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통령 이재명'에 대한 반감이 중도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김문수 현상'이 일회성이 아닐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보수 지지층이 현재 '과흥분' 상태로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는 측면에선 일시적인 현상"이라면서도 "더 주목할 점은 이재명 대표가 중도 민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런 흐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에서 확산된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는 캠페인이 이젠 중도에서도 먹히고 있다"며 "만약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라는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으면 (지지율 역전을) 일회성 결과로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2024년 12월11일 국회에서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할 때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원 안)은 자리에 앉아있다. ⓒ뉴시스

 

범보수 결집시킨 김문수 효과…확장성엔 의문부호

 

강성 지지층에 소구력이 있지만, 중도층 확장성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과거 김 장관이 도지사 시절 119에 전화해 '나 도지사입니다'라며 관등성명을 요구한 사건,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면 김일성주의자"라고 한 발언 등 그의 '막말' 이미지가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체 지금 보수가 재발견해 끌어올리고 있는 정치인 김문수는 누구일까. '한여름밤의 꿈'이든 '용꿈'이든 조기 대선 국면에서 그의 등장은 먼지 쌓인 책장을 털고 다시 펼치게 만든다. '우파 중 우파'로 알려진 김 장관의 과거 행적은 복잡하고 화려했다. '보수의 김문수'가 있기 전에 그는 20년 이상 노동운동에 투신한 '운동권의 전설'로 불렸다.

 

그는 195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권의 피가 흘렀던 그는 1970년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후엔 학생운동 서클인 '후진국 사회연구회'에서 유신정권에 맞서다 두 번 제적당했다.

 

이후 피복공장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 자살한 소식을 접하면서 노동운동에 눈을 떴고, 위장 취업으로 한일도루코에 입사해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전두환 독재 정권 시기에는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1986년에는 5·3 인천 민주항쟁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2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 설난영씨와도 노동운동 동지로 만났다. 김 장관이 삼청교육대 수배자였을 당시 설씨가 그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면서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졌다고 한다.

 

김 장관은 1990년 노태우 정부 당시 처음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노동운동 세력인 이우재·김낙중·장기표·이재오 등과 민중당을 창당했지만, 14대 총선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이후 그가 지금의 보수 성향으로 전향한 결정적 계기는 1990년 초 구소련의 붕괴를 지켜보면서다. 김 장관은 1994년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의 권유로 민주자유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했고, 보수정당에서 3선의 국회의원(제15대·16대·17대)을 지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선 경기지사에 출마해 재선을 지냈다. 2012년엔 도지사 임기 중에 18대 대선으로 첫 대선 도전에 나섰다. 당시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장관 서열 16위…나 같은 사람이 대선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이 안타까워"

 

그가 정치적 고배를 마신 건 도지사 시절 '119 호통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이후 재선의 임기를 마치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보수 텃밭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으나 김부겸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고 만다. 2018년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을 때도 패하고 탈당해 자유통일당·자유공화당 등 극우보수 진영에 합류했다.

 

정치적 재기를 맞은 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윤 대통령은 2022년 김 장관을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앉히면서 "김문수 전 지사는 노동 현장을 잘 아는 분"이라며 "다른 걸 고려하지 않고 현장을 가장 잘 안다고 판단해서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직까지 맡은 김 장관은 윤 대통령에게 '정치인'이자 '관료'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가장 왼쪽'에서 '가장 오른쪽'으로 전향한 첫 변곡점을 지나 '대권주자'로 떠오른 지금, 그는 과연 두 번째 변곡점을 찍을 수 있을까. 현재 김 장관은 대외적으로 대선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김 장관은 자신의 지지율 상승과 관련해 "노동부 장관은 서열 16위이고 정치적인 위치에 있지도 않은데 언급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상당히 답답하고 목마르다는 것"이라며 "나 같은 사람은 고용노동부 일만 잘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돼야 하는데 대선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여권 일각에선 김 장관이 '킹메이커'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중도 확장성이 낮은 김 장관을 대선 국면에서 '전면'보다는 '후면'에 세워볼 수 있다는 구상이다. 한 친윤계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김 장관 본인은 사실 대선 출마 의지가 그다지 없고, 스스로도 중도 확장에 한계가 있기에 (현 여론조사 결과가) '보장된 지지율'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면서 "따라서 차기 보수진영 주자를 밀어주는 '킹메이커' 역할도 고민 중이라는 게 전언"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선도 있다. 김 장관과 함께 일했던 한 측근은 시사저널에 "그는 뼛속까지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민심의 부름에 응답하는 게 소명이다. 김 장관은 그런 소명을 거부할 사람이 아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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