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당산호반길, 山莊의 女人 노래비

2025. 2. 14. 09:18Beautiful People

 

 

 

본명 : 권오명.

                1931년 강원 삼척 출생.

 

 1956년 KBS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

 이듬해 '산장의 여인'을 발표하며 데뷔,  이후 '호반의 벤치', '동심초', '물새 우는 해변' 등을 발표. 

 60년대 전성기 시절 심장판막증, 결핵 등 병마와 싸우며 활동, 이후 전국 교도소와 소년원을 돌며

 재소자를 위한 4백여 차례 봉사활동을 펼쳐  수인들 사이에서 '어머니'라 불리기도 했다.

 

생의 절반 이상을 봉사활동에 바쳤던 그는

 제34회 세계인권의 날에 인권옹호유공표창을 비롯해  5백여 회 표창을 수상했다.

 

 2008년 5월 25일 타계.

 

 현재 청주 일원을 중심으로

 '권혜경가요제', '노래비 건립' 등  각종 추모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산장의 여인』(작사 반야월, 작곡 이재호)은

1957년 발표한  「권혜경」의 데뷔 곡이자 그녀를 대표하는 곡 중의 하나입니다.

1955년 미8군 무대로 노래를 시작한 「권혜경」은 이후 1957년 『산장의 여인』으로 데뷔한 뒤 한때 가수 생활과 일요 신문사의 기자직(記者職)도 겸업(兼業)한 화려한 이력의 가수였습니다.​

1950년대를 풍미한 「권혜경」(1931 ~ 2008)은 당대의 톱 스타, 눈 높은 독신녀(獨身女)였습니다.

 

가냘픈 체격의 청순미로 사내들 마음을 뛰놀게 했고,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알아주던 시절 조흥은행을 그만두고 1956년 당시 서울 중앙 방송국(현 KBS) 가수 모집에 응시, 전속 가수 3기생으로 발탁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뭇 남성 팬들에게 "꿈만 먹고사는 공주님"으로 비쳤지만, 사실 그녀도 아팠던 첫사랑의 상처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 연인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으나, 지닌 것이라 곤 가난밖에 없어서 데이트하느라 커피를 마시고 나면, 자기의 두 무릎 사이에 작게 접은 천 환 짜리를 끼워 탁자 밑으로 전달 했고, 그는 그 돈으로 찻 값을 내며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첫 연인에게는 집안 어른들이 어린 시절 정해준 배필이 있었고, 어느 날 그 여자가 「권혜경」을 찾아와 그 사이의 모든 사정을 알리고 간 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등을 돌려야 했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권혜경」의 집 앞을 서성거렸지만 그녀는 더는 그를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이 첫사랑의 얘기가 "사랑은 가고 노래만 남아"란 제목으로 '아리랑 잡지'에 실린 뒤, 「권혜경」의 팬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다고 합니다. 

 

「권혜경」하면『산장의 여인』이었고

『산장의 여인』하면 「권혜경」 으로 통할만큼 「권혜경」의 대표 히트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장의 여인』은 영화 화 되고 영화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작사자 반야월 선생이 '마산 방송국'에 재직 시 '국립 마산 결핵 요양소'에 위문 공연을 갔을 때, 한 모퉁이에서 흐느끼고 있는 미모의 여성에게 눈이 끌렸다고 합니다. 공연 후 그 사유를 알아본 즉 결핵 환자로서 '외로운 산장(山莊)'에서 회상에 잠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알았고, 이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여 지은 것이 이 노래였습니다.

 

당시 이 슬픔의 노래는 특히 화류계(花柳界)에서 크게 유행했었죠.

 

유흥업소의 여성들이 자신에게 낙착(落着)된 어둡고 슬픈 운명을 『산장의 여인』이라는 대상을 통해 발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 이 노래를 부른 「권혜경」도 노랫말 처럼 병마(病魔)로 인해 고독한 세월을 홀로 보내는 쓸쓸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山莊의 女人

도당산호반길

山莊의 女人 노래비

2019년 11월 건립

 

도당산호반길-
문의문화재단지(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 지번:문의면 문산리 산 6-1)

 

 

충북 청주시 청남대 옆 문의문화재단지에는 가수 권혜경의 노래비가 있다.

 

193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권혜경(1931-2008)은 세무서원이었던 부친 덕택에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당시의 부유층이 그랬듯 가수가 되는 것은 집안에서 반대하여 꿈을 접었다가 결국 1956년 KBS 전속2기 가수오디션에 합격했다. 다음해인 1957년 <산장의 여인>을 취입에 스타로 떠올랐다.


권혜경은 부친의 사망, 좋아했던 남성의 정혼 등의 사건으로 결혼을 접고 홀몸단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고통속에서 절에 들어갔던 권혜경은 알고 지내던 보살의 권유로 교도소 등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봉사했고 말년에 부친, 조부가 살았던 청주에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박성서 평론가의 조사에 따르면 권혜경이 치매가 온 이후에 안타깝게도 살던 집이 타인에게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타인은 다름아닌 간병인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였고, 다시 수소문해보니 그 집 마져 누군가에게 팔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以不漏,하늘에 있는 그물은 크고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으로, 악행을 저지르면 언젠가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 평생 봉사해온 권혜경에게 위해를 가한 자들은 결국 그 벌을 받게 되는 것이 하늘의 이치임을 알려주고 싶다.

 

문의문화재단지 주차장에서 문화재관람을 위해 언덕을 올라가기 전 이 '산장의 여인' 노래비를 만날 수 있다. '산장의 여인'은 이재호 작곡, 반야월 작사인데 반야월의 친일행적으로 현재에도 비난이 있다. 이 곡은 반야월이 마산 국립결핵요양소에서 위문공연을 갔다가 만난 한 여인의 사연을 듣고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마산에 건립되려다가 친일행적때문에 결국 무산됐고, 이제 본인이 여생을 보낸 청주에 자리잡은 것이다.

 


노래비 옆에는 이렇게 대청호를 만날 수 있다. <호반의 벤치>도 함께 불러 히트했던 권혜경. 그의 노래처럼 그야말로 호반에 자리잡았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말년을 보냈던 그의 삶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


옆에 청남대가 있는데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자 명당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는 5공때 지어져 노무현 대통령때 국민에게 개방되어 현재는 청남대재즈토닉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 KBS에서 제작된 권혜경 드라마를 보면 그의 인생과 클래식의 성악가적인 발성을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 이런 자료라도 남아았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봉사는 나의 기쁨, 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 권혜경의 인생 이야기 [이것이 인생이다 125화]ㅣKBS 031014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XVmWWmQLlpw

 

(이것이 인생이다-방송일:2003.10.14.)

KBS HUMAN : 뭉클

Aug 17, 2022 #人生 #이것이인생이다 #인생

#이것이인생이다 #별난인생 #인생 #人生

  • 방송일 : 2003년 10월 14일
  • EP 125. 산장의 여인

봉사는 나의 기쁨,

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 권혜경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희로애락 인생 이야기,

이것이 인생이다

 

 

산장의 여인 :권혜경
작사 : 반야월 / 작곡 : 이재호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어
적막한 이 한밤에
임뵈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가네

 

https://www.youtube.com/shorts/zkSG09zOR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