墓碑銘 / Epitaph ; 莊重하고 華麗한 빈들(曠野)의 초인(超人)

2024. 7. 1. 11:10Lessons

墓碑銘 / Epitaph

묘표에 새겨 고인을 기념하는 명문(銘文)이나 시문(詩文).

 

묘비명-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현대시 파트에 이육사 시인의 「강 건너간 노래」와 엮여 출제되었다.

 

公은 淸雅하고 謙虛한 선비이면서 熱烈하고 楚剛한 志士요 莊重하고 華麗한  빈들(曠野)의 초인(超人)  

 

강 건너간 노래   이육사

 

섣달에도 보름께 달 밝은밤
앞 내ㅅ강(江) 쨍쨍 얼어 조이던 밤에
내가 부르던 노래는 강(江)건너 갔소

강(江)건너 하늘끝에 사막(沙漠)도 다은곳
내 노래는 제비같이 날러서 갔소

못잊을 계집애나 집조차 없다기
가기는 갔지만 어린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 모래ㅅ불에 떨어져 타 죽겠소.

사막(沙漠)은 끝없이 푸른 하늘이 덮여
눈물먹은 별들이 조상오는 밤

밤은 옛ㅅ일을 무지개보다 곱게 짜내나니
한가락 여기두고 또 한가락 어데멘가
내가 부른 노래는 그 밤에 강(江)건너 갔소.

강(river)

 

 

빈들(曠野)의 초인(超人), 이육사(李陸史) 의 고향, 도산면 원촌(村)마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1960년대의 모습)

 

광야(曠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 하든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 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李陸史)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시인. 본관은 진성(眞城), 호는 육사(陸史),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또는 이원삼(李源三), 이활(李活)이며 후에 이육사로 이름을 개명했다. 윤동주, 한용운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저항 시인으로 유명하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독립유공자 이광호(李洸鎬)와 독립유공자 이영호(李寧鎬)는 그의 9촌 삼종숙(三從叔)이다.

 

 

 

 

절정(絶頂)

- 이육사(1904~1944, 경북 안동)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만주로 망명한 육사의 외숙들이 경영하던 ‘일창한약방(一蒼漢藥房)’은 독립 운동하는 이들의 연락처 구실을 하던 곳이다. 정의부(正義府) · 군정서(軍政署) · 의열단(義烈團) 같은 항일 단체에 소속되어 독립 운동을 하던 육사도 자주 만주를 오가는데, 「절정」은 바로 그 만주를 배경으로 한 시다. 쨍 하고 깨질 것만 같은 북방의 칼날 같은 겨울 추위와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막막함 속에서 그가 기다리던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은 누구일까.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국내에 무슨 일이라도 터질라치면 번번이 일경에게 예비 검속을 당하고, 무려 열일곱 차례나 투옥된 시인 이육사. 그 자신이 바로 초인이고, 그 초인의 가슴속에 들끓던 고단한 삶 속의 결연한 의지가 바로 “강철로 된 무지개”는 아니었을까. 그의 삶은 북방의 칼날 같은 추위 속에서 홀로 피어나 고고히 향기를 뿌리는 한 떨기 매화(梅花)를 떠올리게 한다. 그와 가까이 지내던 시인 신석초(申石艸)는 뒷날 “그는 항상 초조한 것 같았고 분주했고 무엇인가 구름을 잡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며 공상적인 데가 있었다.”고 돌아본다.

民族詩人 李陸史眞城李公源祿之墓, 

配儒人順興安氏 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 1904-- 1944)선생

묘소(墓所) 이장식(移葬式)

  2023년  4월 5일 오전 11시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 옆 산에서 봉행(奉行).

 

1960년 묘비명을  쓴 시인 김종걸(1926~2017)은 아래와 같이 비문을 마무리하였다.

 

公은 淸雅하고 謙虛한 선비이면서 熱烈하고 楚剛한 志士요 또한 莊重하고 華麗한 詩人이었으니

비록 그 生涯는 짧고 辛酸하였건만 그 志節과 詩文은 길이길이 겨레의 心琴을 울리고 남음이 있으리라 

 

 

 

[나의 종형* 이육사(李陸史)를 말한다]
-희망의 노래 '청포도' 시(詩)를 중심으로 
 
훨훨 날아가는 갈매기
옛 친구같이 찾아올 7월이 오면
이육사를 만나는 것으로 첫날을 열어 보리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소낙비처럼 쏟아질 7월이 오면
청포도를 맛보는 것으로 첫날을 시작하리
       <재미 시인 오정방, '7월이 오면'>
올해도 장마와 함께 7월이 열리나 봅니다.
해마다 이 맘때면 '청포도' 시가 떠오르고 이 시가 주는 메시지를 나름 음미해 봅니다.
조국 광복을 염원한 거냐?
의열단 윤세주*에 대한 그리움이냐?
육사와 윤세주의 우정과 동지애는 이 글 뒤부분에 소개되는 고은주 작가의 장편
<그 남자, 264>에 잘 그려져 있으며
정대재 작가의 장편 <떠오르는 지평선> 2권 3부에서 다루어져 있습니다
*종형=사촌 형님 
*윤세주=육사를 의열단에 가입시킨 인물 
<사진 1. 이육사 스스로 자신의 시 중 가장 좋아한다는 시 '청포도'>

 3.1운동이 일제의 무력진압으로 끝나자, 이 땅의 젊은 피들이 중국 길림에 모여 투쟁방법을 바꾸게 됩니다.
신채호의 조선혁명행동강령에 의거하여 21살 김원봉과 18살 윤세주 등이 주동, 무력투쟁단체 의열단을 결성한 것입니다.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한다"
<사진 2. 의열단 관련 이미지> 
 
1925년 북경 군사정치사관학교를 졸업한 21살 이육사도 의열단에 가입합니다.
시인은 펜 대신 총을 잡은 것입니다.
한창 피어나는 꽃 같은 청춘들이 그렇게 하나 둘 무장테러와 전투에서 희생됩니다 .
<사진 3. 의열단 소재 영화 '밀정' 중> 
 
이육사의 시신을 수습한 우리 집안의
여성 의열단원이었던 이병희 여사입니다.
<사진 4.이병희 여사>
생전에 대구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베이징 감옥에서의 마지막 육사에 대한 증언을 들으며 안타까움을 같이 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수인번호 264를 취음해 호로 쓴 이육사는
'일제 강점기 역사를 도륙낸다'
'치욕의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는 의미에서 '육사(戮史)'라는 호를 먼저 사용했습니다.
시에는 '청포', '은쟁반', '모시수건' 등의 귀족적인 시어를 써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은유하고 혼돈의 역사에 처절하게 저항하며 미래를 염원했습니다.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고.
그러면 곧 일본도 끝장난다고...."
<사진 5. 큰댁 4째 원조 형님(월북 문학 평론가)이 펴 낸 유고시집 '육사시집'> 
 
이육사 가계도 입니다
육사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에서 진성 이씨 가호(家鎬, 퇴계 13대손)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본명 원록(源祿).
표에 나와 있지 않지만 저는 육사의 숙부 세호(世鎬)어른의 만득자입니다.
표의 가호 어른이 제 백부님이 되시고,
육사를 포힘 6분의 종형(사촌)이 계십니다.
영남일보, 한국섬유신문에서 일했던 저는 천학비재하고 시와는 거리가 멀어 육사 시에  대해 끄적이고 있다는 것이 언감생심입니다
<사진 6. 이육사 가계도>
 
'높은 뜻 펼 길 없어 청한으로 자조하고
부조위한 정성은 후곤위해 바치셨네.
호연한 기상을 어디에서 찾아볼꼬
우뚝한 아양루에 임의 정취 서리었네'
선친 이세호(李世鎬, 영남대하교 전신 대구대학 재단이사 겸 동양철학과 교수)의 묘비명입니다.
(족친 이완재 교수 찬)
육사 3형제가 투옥되는 등 독립운동으로 멸문지경에 이른 큰댁의 종손들을 애육하여 장성시키셨습니다.
 <사진 7. 선친 내외분 묘소ㆍ묘비> 
 
그렇습니다.
육사가 희망을 노래한 '청포도' 시(詩)는 그와 함께 싸우며 저항하다 쓰러진 어린 의열단원에 대한 헌정의 글이며, 울며 읽어 내려간 조문(弔文)이었습니다.
죽음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채 마흔이 안된 짪지만 매운 초인적 삶에 대한 자명(自銘)*이며 끊임없는 향수와 기다림,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염원이었습니다.
*자명=스스로 쓴 묘비명
<사진 8. 육사문학관 내 동상ㆍ시비> 
 
이육사가 노래했던 내 고장 '청포도'가
와인으로 재탄생합니다.
‘264 청포도 와인’으로 명명된 이 와인은 안동시 지역특화사업의 일환으로  이육사의 고향 안동시 도산면 일대에 청포도(품종: 청수)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육사문학관 인근에 와이너리를 완공하여 광야, 꽃 등육사 시 제목 시리즈로 본격 시판에 나서고 있습니다. 
<사진 9. 청포도 와인 포장>
 
'오늘의 작가상'에 빛나는 고은주 작가는 '비밀의 여인'이 들려주는 이육사의 처절한 삶과 강철 무지개 같은 시에 대한 이야기, 장편소설 <그 남자 264>를 발표했습니다
소설 <그 남자 264>가 시작되는 1939년, ‘청포도’시가 발표되었던 바로 그 시절에 육사가 살았던 종암동에는 그를 기념하는 ‘문화공간 이육사’가 건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몇해 전, 이 기념관에서
<그 남자 264>를 원작으로 하는 낭독극
<264, 그녀가 말하다>가 공연됐습니다.
이어 육사의 외동딸 이옥비님과 원작자가 참여하는 좌담회가 이어졌습니다.
이 '문화공간'를 운영하는성북문화재단 페이스북에서 낭독극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사진 10. 낭독극 장면>  
 
근래 국내 유수의 작곡가들에 의해 육사 시에 곡을 붙인 주옥 같은 가곡이 발표되고 연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CMAK음악인연합회는 지난 5월 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육사 탄생 120주기 탄신일에 즈음하여 '차마 바람도 흔들지 못해라' 주제로 정기연주회를 가졌습니다
2부 프로그램 '이육사와 거닐다'에서는 육사의 종손녀인 소프라노 이영규의 독무대로 펼쳐져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이육사 시 홍신주 작곡의 가곡 교목, 청포도, 강 건너간 노래 등 3곡을 독창했는데 횃불처럼 강렬하고 날선 바위처럼 비장한 육사의 결기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는 재종손녀가 되는 이영규는 경북대학교와 이탈리아 음악 명문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독창자와 오페라 등 다양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진 11. 공연 후 기념촬영, 무대곡 이영규와 필자, 족친분들>

<사진 1. 이육사 스스로 자신의 시 중 가장 좋아한다는 시 '청포도'>

 

 

사진 4. 우리 집안 여성 의열단원 이병희 여사

사진 5. 큰댁 4째 원조 형님이 처음 펴낸 유고시집 '육사시집'

 

사진 6. 이육사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