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없는 추억 - 차은희 - 경상도아가씨의 순정

2024. 6. 2. 09:33The Story from Me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차은희씨  별세, 향년 86

등록 2023.10.30 13:10:26수정 2023.10.30 14:45:29

 

부산과 인연 깊어…1950∼60년대 다양한 장르 소화하며 인기

1956년 '한 많은 오륙도'로 데뷔…10년간 100여곡 발표

 

對答없는 追憶  

차은희(車銀姬)

본명 최은섭(崔恩燮) : 1937년 서울 장충동 출생 

 

차은희씨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불운한 가수이다 .

 

효제초등을 거쳐 숙명여중 1학년 때 6·25전쟁이 일어났다. 

 

한국 전쟁통에  서울에서 숙명여고를 다니다 부산 데레사여고로 전학했는데 학업을 위해 고모 가족을 따라 이주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고모는 부산 남성여중 교사로 재직 중이었고, 조카의 절대적 보호자였다.

 

1956년  부산 데레사여고 3학년 때  인근에 살던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의 권유로

부산 국제신문사가 주최한 노래자랑에 출전하여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으로 1등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차은희는 1등으로 뽑혔고  차상은 은방울자매의 박애경이었다.

 

이듬해에는  부산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가요콩쿨에  출전해 최종결선까지 올랐고 마침내 최고상을 받았다.

 

이날 심사위원은 미도파레코드 사장이었던 가수 한복남, 작사가 야인초, 작곡가 이재호  백영호 등이었다. 특히 이재호는 차은희의 재능과 가창력에 특별히 주목 '"결승에서 떨어져도 내 제자가 된다" 고 했다고 한다.

이 대회 출신의  선배가수는 남백송과  방운아였고, 후배가수는 최갑석이다.

 

국제신문에  최고상을 받은 차은희의 인터뷰 기사가 실리면서 고모 가족들도 뒤늦게 대회 출전을 알게 됐다.

고모는 조카가 가수의 길을 가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뿐만 아니라 차은희의 모교 데레사여고에서도 학생 신분으로 풍기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 움직임까지 있었다. 

 

집과 학교에서  歌手로 활동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허락하지 않은 관계로  무대에  서지 못하였다. 

 

1956년의 '한 많은 오륙도'를  데뷔곡으로  일선의 우리 오빠, 대답 없는 추억, 신세계 전속때 윤일로와 같이 듀엣곡 '아베크 토요일'을 불렀으며, '명랑한 신혼여행',  1961년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등을 불렀다.

 

1963년에 발표한 ‘아내의 노래’는  선배가수 심연옥의 곡이었으나  원곡 가수보다  낫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1966년 결혼과 함께 다시 부산으로 이주하여 서울산 부산아지매가 된  차은희는 부산을 지키며 살면서도  

가요계와 거리를 두었고, 급격한 시대변화 속에서  소외된  悲運의 가수가 되었다. 

 

절제된 가창력이 돋보이고 우수에찬  애잔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던 목소리의 주인공...최은희.

 

경상도아가씨의 순정/ 1962

최치수 작사, 김성근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7gAPpkCwO6Q

 

나 어릴적

형님들이나 누나들이 노래하던 옛가락~~~...

 

가끔씩은

가사 일부와 가락이  떠오르지만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아는 부분만(대개 도입부 한 소절 ~) 

흥얼대기도 한 세월은 그렇게도  무심히 흘러만 가버렸다.

 

오래전 노래로

도입부 가사가  제법 ㅎ서정적이면서  애수에 젖는 듯 센티멘타루한 분위기...

 

"능금꽃이 함박눈 처럼  쏟아지던 그날밤"~~~

 

.....................................................................

 

그 때 그 시절엔 사과꽃은 있어도 없었다.

피어도 그것은 (과수원, 사과밭의 사과꽃이 아니라) 능금밭의  능금꽃이었다.

 

왠지 사과는 마치  꾸어다 놓온 과일처럼  이름이  생경하게 들렸다.

(지금도 나에게는  능금(꽃)이  그리도  곱고 예쁘고 친근하기만 하다)

 

능금꽃 피는 고향~

 

 

 

그저 가사가 아름다운 그림 같아서

 

첫 소절은 평생  뇌리에 백였고

누가 부른 노랜지도 모른채

세월은 60여년 흘러만 가버린 

어느 세월,  어느 날, 

우연히...

 

궁금해졌다. 그 시와  가수가  ...

 

다행히 상전벽해의 세상이러니

인터네트 '한 소절' 검색에 베일이 확 벗겨졌것다.

 

//

능금꽃이 함박눈 처럼

쏟아지는 그날 밤~

 

박우물가

홀로 선 고목

구부러진 허리에

두 사람의 이름을 이름을 색이면서

그리우면 불르라고  당부튼 말씀

對答없는 追憶속에 세월만 또 가네

//

 

아름다운 선율에

은쟁반 위  또르르르~  구르는 옥구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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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答없는 追憶   -  車銀姬 

1958

고명기 작사, 김교성 작곡

 

g

 

 

*박우물 : 바가지로 물을 퍼낼 수 있는 얕은 우물 ;  예, 박정동( 朴井洞· 박우물 골)

*浅い井戸 ( :浅あさい井戸いど , 아사이 이도 ) :  パガジ(바가지)でくめるほどの井戸

 

 

@HGRyu-sz9kg

 

가요사에 길이 남을

귀한 분의 우수어린 애잔한 목소리~

 

귀하신 분의 '대답없는 추억'

고맙게 새겨 듣습니다,

 

시골 소년의 귓전을

아스라이  울려주신

그림같은 서정~ 아름다운 선율입니다.

 

對答없는 追憶만 남기고

저 하늘 멀리 홀연히

떠나가신 님이시어,

 

평화속에 영면하소서~!

 

님께서 남겨주신

對答없는 追憶을

오늘도 내일도

부르오리다~

 

부르다 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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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차은희씨  별세, 향년 86

등록 2023.10.30 13:10:26수정 2023.10.30 14:45:29

 

부산과 인연 깊어…1950∼60년대 다양한 장르 소화하며 인기

1956년 '한 많은 오륙도'로 데뷔…10년간 100여곡 발표

"맑고 또렷한 발음…맘보·트위스트·민요·가곡 모두 소화"

[서울=뉴시스] 차은희.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3.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등 여러 히트곡으로 1950~60년대 인기를 누린 원로가수 차은희(최은섭)가 별세했다. 향년 86.

30일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등에 따르면, 차은희씨는 전날 오전 5시24분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숙명여중 재학 중 6·25 동란이 터져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다. 부산 데레사여고 3학년 때 인근에 살던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의 권유로 국제신문사 주최 콩쿠르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으로 1등을 차지했다. 차은희라는 예명은 이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작곡가 이재호가 지어준 것이다. '리어카에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아이'(車銀姬)라는 뜻이다. 졸업 후 HLKB(현 KBS 부산) 전속가수로 발탁, 부산·경남 지역을 돌며 공연했다.

1956년 '한 많은 오륙도'를 취입하며 정식 데뷔한 차은희는 대구 애호레코드를 거쳐 1958년 신신레코드(이후 신세기), 아세아레코드에드의 전속가수로 활약했다. '경상도 아가씨의 순정' 외에 '일선의 우리 오빠' '대답 없는 추억' '여배우 일기' '청춘 아베크' 등 약 10년간 100여 곡을 발표했다.

[서울=뉴시스] 차은희.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3.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1960년에 발표한 곡 '꽃 파는 차은희'가 확인해 주는 것처럼, 그녀의 이름이 노래 제목에 삽입될 정도 당시 크게 주목 받았다. 이 곡의 작곡가는 송운선이었는데, 그는 차은희와 함께 공연하던 HLKB의 기타리스트였다. 명랑한 분위기의 곡이었는데 노래 제목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차은희가 개인적으로도 오랫동안 아끼던 노래로 알려졌다.

차은희는 1962년 공연단체를 이끌던 이춘식 쇼단장과 결혼한 이후 자녀 양육 등에 살림에 집중했고, 1965년 신곡 발표와 활동을 중단했다.

다만 1975년 부산연예협회 가수분과 위원장을 맡았고, 2007년 부산 출신 가수 현인을 기리는 현인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는 등 부산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노래 도시 부산을 지키는 버팀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성서 평론가는 "'사월의 별'(1962)을 통해 4·19 혁명으로 유명을 달리한 넋들을 위로했고 '서울의 전차 차장'(1962)에서는 서울 시내를 달리는 전차 차장의 일과를 유쾌하게 묘사하는 등 노래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그려냈다"고 봤다.

[서울=뉴시스] 1956년 첫 취입한 '한 많은 오륙도'의 장소를 56년 만인 2012년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와 함께 찾은 차은희.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3.10.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차은희가 가수로서 높게 평가 받는 부분 중 하나는 대한 맑고 또렷한 발음이었다.

박 평론가는 "맑고 고우면서도 풍부한 성량으로 여러 음반사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발표했던 고인은 서정적인 트로트에서부터 맘보, 트위스트, 민요, 가곡까지 모두 소화해 낼 정도로 다재다능했던 가수"라고 기억했다.

말년까지 부산 양로원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을 이어간 그는 최근 투병 중에서도 톱 가수 임영웅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평론가는 "누워 있다가도 TV에서 임영웅의 목소리가 나오면 '벌떡' 일어났다고 전했을 정도였다"면서 "임영웅 에 대해 '지금까지 본 가수 중에 표현력도, 표정도 최고'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팬이었다고 유족은 전했다"고 덧붙였다.

 

빈소 부산전문장례식장 VIP 5호, 발인 31일 오전 10시30분. 051-312-4444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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