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rose of summer, Chai Sunyup(채선엽,蔡善葉)

2024. 7. 17. 06:05Beautiful People

The last rose of summer, Chai Sunyup(채선엽,)

https://www.youtube.com/watch?v=5Jb6GP5Q6I8 

 

Korean singer Chai Sunyup 채선엽, 한떨기 장미꽃 The last rose of summer was recorded in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1938.

 

She was one of the early classical soprano singer who studied in Japan. Her elder brother was a famous composer Chai Dongsun(채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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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Rose of Summer〉는 아일랜드 시인 Thomas Moore (1779 ~1852)의 시이다. 그는 1805년 아일랜드 킬케니(Kilkenny) 카운티의 젠킨스타운(Jenkinstown Castle)에 머물면서 이 글을 썼다. 그곳에서 Rosa 'Old Blush'(China rose) 표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Rosa 'Old Blush'(China rose)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연분홍 장미(월계화: 月季花)로 알려지고 있다

Rosa 'Old Blush'

이 시는 Belfast Harp Festival에서 Denis Hempson (1695~1807, Irish harper)의 공연을 바탕으로 1792년 Edward Bunting (1773~1843, Irish folk music collector)이 필사한 "Aisling an Óigfhear" 또는 "The Young Man's Dream"이라는 전통 음악에 맞춰져 있다. 이 시와 곡은 함께 1813년 12월 토마스 무어의 《A Selection of Irish Melodys 5권》에 출판되었다.

 

최초의 작곡과 피아노 반주는 John Andrew Stevenson (1761~1833, Irish composer)이 했으며 19세기와 20세기에 몇 가지 다른 편곡이 뒤따랐다.

한국에서는 이 노래를 한떨기 장미꽃으로 번안하여 작곡가 채동선의 누이동생인 소프라노이자 피아노 연주자 채선엽 (蔡善葉: 1911~1987)이 1938년에 레코드 취입했다.

 

 

Lyrics

The Last Rose of Summer

Thomas Moore - 1779-1852

 

 

‘Tis the last rose of Summer,
   Left blooming alone;
All her lovely companions
   Are faded and gone;
No flower of her kindred,
   No rose-bud is nigh,
To reflect back her blushes
  Or give sigh for sigh!

 

I’ll not leave thee, thou lone one,
   To pine on the stem;
Since the lovely are sleeping,
   Go sleep thou with them.
Thus kindly I scatter
   Thy leaves o’er the bed
Where thy mates of the garden
   Lie scentless and dead.

 

So soon may I follow,
   When friendships decay,
And from Love’s shining circle
   The gems drop away!
When true hearts lie withered,
   And fond ones are flown,
Oh! who would inhabit
   This bleak world alone?

 

여름날 마지막 장미 홀로 남아 피어있네

사랑하는 친구들도 모두 시들어 사라지고

꽃잎도 꽃 순도 이제 남은게 없어

붉고 수줍던 모습들이 아련히 그리워지네

 

외로운 그대 가지에 홀로두고 떠나지 않으리

아름다운 꽃들 잠자고 있으니 함께 잠들어요

잠든 그대들 위에 꽃잎 사뿐히 뿌려 드리오리

향기없이 누워 잠들고있는 정원위에

 

그대들 없어지면 나 또한 따라 가리

찬란했던 사랑과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진실되고 좋은 친구들도 모두 가버리면

아! 황량한 이 세상 어찌 홀로 살아 갈거나...

 

 

채선엽 번안시

 

한 떨기 장미꽃이 여기 저기 피었네

한 떨기 장미꽃이 여기 저기 피었네

꽃들은 졌지마는 꽃망울도 없나

한 떨기 장미꽃이 여기 저기 피었네

 

나는 못 떠나겠네 나의 포근한 자리

영원한 잠을 자려 풀들을 덮었네

저 달은 침침하고 서산은 적막타

발걸음 들리지 못해 여기 나는 잠자리

 

 

채선엽 ( ,1911∼1987) 서울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장, 줄리어드음악학교 교환교수 등을 역임한  여류성악가.

*한국 최초의 물리학 분야 전공 이학박사이자 前 서울대학교 총장 최규남(崔奎南)의 부인.

 

1923년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미국인 교사 대메론(Dameron)과 매리(Mary, E. Y.)에게 각각 성악과 피아노를 교육받았다. 그뒤 이화여자전문학교 피아노과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 당시 연희전문학교 교수 현제명(玄濟明)의 권유로 일본 동경의 벨칸토성악연구원에서 벨트라멜리 요시코(吉子)를 2년간 사사하였으며, 1934년일본 콜럼비아레코드회사에서 「아! 목동아」·「한떨기 장미」·「구노의 세레나데」·「즐거운 나의 집」 등을 취입하였다.

 

1937년 대판(大阪) 우메다공회당(梅田公會堂)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창회를 가졌으며, 1938년 동경 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졌다. 이 때 평론가 오다(大田黑元雄)는 “정도(正道)에 들어선 유망한 예술가”라고 평을 하였다.

 

1939년 5월 귀국하여 서울부민관(府民館)에서 귀국독창회를 가졌고, 모교인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1950년 이화여자대학교 음악과장,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예술대학장을 지냈고, 1959년 미국 국무성초청으로 줄리아드음악학교(Julliard School of Music)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프레셜(Freshel)에게 성악을 공부하였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고

1965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재단이사를 역임하였다.

1970년 신사임당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