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30. 05:14ㆍKorean Arts
박목월이 털어 놓은 '이별의 노래'의 주인공 / '떠나가는 배'와 '이별의 노래'
목월의
기러기 울어예는 -
시인 박목월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정희 대통령이 행사장에 등단하면 의련히 흘러 나오던 대통령 찬가~...
전두환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서거나 돌아오거나 할 때 흘러나오던 노래가락이다.
“어질고 성실한 우리 겨레의 찬란한 아침과 편안함 밤의 자유와 평화의 복지 낙원을 이루려는 높은 뜻을 펴게 하소서 아아아, 대한 대한 우리 대통령 길이길이 빛나리라 길이길이 빛나리라.”
대통령 찬가 大統領賛歌 President's Hymn
1972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nwoQ0BP9Wls
김일성 장군의 노래는 저리 가라할 <대통령 찬가 大統領賛歌 > 자주 흘러나왔지.
전두환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서거나 돌아오거나 할 때 흘러나오던 노래가락이다.
‘길이 길이 빛나리라’ 대목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벗겨진 머리에 반짝거리는 조명이 ㅎ 잘 어울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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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노래의 작사자는 박목월. 작곡가는 김성태다.
박목월. 청록파 3인 중의 한 명인 박목월은 마음이 약하고 물렀다는 그의 성품 탓인지 조지훈과 박두진이 정권에 대해 보여 준 강단을 그는 보여주지 못했고 되레 대통령 찬가를 짓고 <육영수 여사>의 전기를 쓴다. 육영수 여사의 신화(?)가 집대성된 것은 박목월의 손으로였다. 가끔 박정희 대통령이 던진 재떨이에 맞아 시퍼렇게 눈가에 멍이 들었다는 ‘육박전’의 여사는 ‘학(鶴 )같은 국모’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Za792ZXG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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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찬가 작사 작곡 콤비는 또 하나의 유명한 노래를 보유하고 있는 바
<이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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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일찍이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에서 함축의 절정을 보여 줬던 시인은
<이별의 노래>에서도 짤막한 단어들 안에 담을 걸 다 담는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지만 역시 천재는 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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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에 얽힌 사연이 있다.
박목월 자신이 밝힌 노래의 배경과 사람들이 얘기하는 두 버전이 있는데
박목월 자신은 수필집 <구름에 달 가듯이>에서 이 노래에 등장하는 이별의 대상을 밝히고 있다. 물론 이름이나 사는 곳, 진도 나간 사연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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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어느 날 처음 만나고 눈발 날리던 날 두 번째 마주하고 세 번째는 눈부신 햇살이 내려치는 날이었다나.
그런데 그녀는 중병을 앓고 있었고 목월에게 자신의 침상을 지켜 달라고 청했단다. 슬픈 건배를 하고.... 이윽고 그녀는 세상을 떠났으며 목월은 <이별의 노래>를 읊조렸다고 쓰고 있다.
어디 사는 누구였는지 역시 시인답게 그는 영원한 비밀로 감추어 버리는 센스도 멋도 있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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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평생에 가장 소중한 이름 하나를 감출 줄 모르는 헤프고 어리석은 바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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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긴 하지만 그에게 ‘가장’이라는 최상급 부사는 별로 의미가 없으리라. 그 외에도 소중한 이름(?)은 많았으니까. 그리고 <이별의 노래>는 거기에도 얽혀 있으니까.
목월에게 치명적인 사랑은 한국전쟁이 막 끝난 뒤에 왔다. 무려 5남매의 아버지이자 착하고 사려깊은 아내를 둔 남자이지만 골키퍼에 수비수 많다고 골 안들어가냐고 소리치는 공격수로 조카뻘의 여대생이 있었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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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대생이 자신에게 보통 이상으로 접근한다 싶자 마음 약한 남자는 친구를 보내어 여대생을 달래려 들었다. 헛물 켜는 사람에게 “얘, 포기해!” ... 이 여학생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나 보다. 눈을 똑바로 뜨고 두 손을 모으고 턱을 당기고 얘기한다. “선생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죄는 아니겠지요.” 이렇게 나오면 사실 대책이 없다. 그때부터는 삼자개입이 안돼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사자들끼리 풀어야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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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은 일찍이 글로만 친교를 나누던 조지훈이 경주 구경을 못해 봤다고 하자 “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 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느란 옥적(玉笛)을 마음속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하는 연애편지같은 답장을 보내고 자신의 고향을 찾자 역전에 달려나와 ‘조지훈’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번쩍 쳐들었다는 일화에서 보듯 섬세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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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환대받고 귀경한 후 조지훈이 “이 밤 자면 저 마을에/꽃은 지리라//다정하고 한 많음도/병인 양하여/달빛 아래 고요히/흔들리며 가노니….”하는 완화삼을 보내고 그 답으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로 화답한 일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멋있는 장면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인 나그네는 여대생의 구애 앞에 그만 길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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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아니라 ‘저 바다 건너서 돌하루방길’로 사랑의 도피를 해 버린다.
여기서도 다양한 전설의 버전들이 전한다.
“선생님과 제주도 여행을 한 번만이라도 하면 원이 없겠어요” 해서 따라나섰더니 살림집이 차려져 있더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뭐 그러기야 했겠나. 심약하고 부드러운 심성의 목월이 넘어간 거겠지.
그들을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여자는 자주 아파서 목월이 업고 다니는 일이 많았고 호칭은 꼬박꼬박 선생님이었고 결정적으로 여자는 탤런트보다도 이뻤다고 한다. 한 번은 도둑이 들어 방안을 싹 쓸어갔는데 여자가 사진첩만은 찾아달라고 경찰에 애걸했지만 이미 불타 버린 뒤였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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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운의 커플이 어떻게 헤어졌는지에 대한 전설도 다양하다.
여자의 아버지가 나타나 딸을 끌고 가면서 박목월을 나무에 묶어놓고 갔다는 액션 영화부터
목월의 아내가 나타나 조카같은 여자에게 겨울옷과 함께 돈까지 내밀고 돌아서자 그만 여자가 감복하여 목월에게서 물러났다는 멜로 영화까지,,, 세세한 버전이 다른 얘기들이 몇 가지나 있지만 이들의 이별에도 박목월의 절창이 드리운다. <이별의 노래>는 노래 가사로 축약된 것이고 원시는 제법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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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 높은 하늘 싸늘한 바람 먼 나라 / 그렇게 높이 우리 가슴은 그리움을 키웠는데 / 이제 깊게 빈손으로 돌아가라 하네요 // (…)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 깊어 가겠네요 /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우는 겨울밤도 있겠지요 / 너도 가고 나도 가는 야속한 가을날이 / 그래도 아름다운 건 당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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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검푸른 바다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는 걸로 보아 우는 것 같았지만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던” 불혹의 시인과 창백한 청춘의 이별이 그냥 9천만 화소로 그려진다.
또 가곡 <떠나가는 배> 즉 “저 푸른 물결 외애치이이며~~” 하는 노랫말 역시 목월의 것이다. 필시 그것도 제주의 이별에서 나왔겠지만 이런 시를 헤어지는 여자 앞에서 읊었다면 그녀는 슬펐겠지만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위해서만 그 아름다운 싯귀가 창조됐다고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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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소월 남에 목월”이라는 정지용의 극찬을 들으면서 문단에 데뷔했고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노래를 4천만이 부르게 했으며 친구 조지훈의 표현대로 “다정하고 한 많은 게 병”이어서 어떻게든 달을 안아 보려고 애쓰는 구름 같은 여자들 사이를 ‘구름에 달 가듯이’ 주유했던, 그러나 그로 인해 본인도 무척이나 아팠을 시인의 마지막에 떠오른 여자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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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추억에 관한 코멘트를 빌려 와 본다.
“수천년 전 같기도 하지만 바로 어제 같기도 하다. 이와 같은 추억은 시공을 초월해서 살아 있는 것인데.“
하여간 시인은 시인다운 시인이다.
박목월이 털어 놓은 '이별의 노래'의 주인공 / '떠나가는 배'와 '이별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dnnL7yd5-A4
박목월이 이름이 지금 생각나지 않는데 아름다은 글을 쓴 여류와 사랑하다가 헤어지면서 쓴 시.
산비둘기. 탱자나무 울타리 등 간단한 단편작가인데.
박목월 시인의 교수시절 제자인 여대생과의 사랑의 도피는 아들 박동규 교수께서도 증언한 내용이고 두사람이 동거했던 제주도 관덕정 부근 여관(마당이 넓은 한옥주택 지금은 사라지고 없음) 주인의 아들(당시 중학생 적어도 2010년경까지는 제주에 생존해 있었음)도 증언한 내용입니다.
그 중학생 아들에 따르면 두사람이 여관에 월세를 얻어 1년 가까이 동거를 하고 여대생이 매끼니마다 직접 밥을 지어 두사람이 같이 식사를 했답니다
그리고 그 여대생의 생김새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증언을 했는데요 몸집이 갸날픈 미인이라고 합니다
또 《떠나가는 배》의 작사가인 양중해 시인(전 제주대 국문과 교수)도 작고하시기 전 증언하기를 6.25가 일어날 무렵 자신이 제주 제일중 교사 시절 박목월 시인이 제자인 여대생과 제주도로 와서 동거중이었는데 자신이 부두에서 두사람이 이별하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그 피를 토하는 분위기에서 시상이 떠올라 그 시를 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제주 제일중 음악교사로 있던 변훈 선생이 여기에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변훈은 625때 제주도에 피난을 왔다가 제일중 교사로 들어왔는데 휴전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하신 분입니다.
당시만해도 사회정서상 박시인의 사랑의 도피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제주의 문인들이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박시인과 가까이 할수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남자들이 첩을 줄줄이 거느리고 장관급 공직자들도 부부동반 모임에 첩을 대동하고 나갈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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